11월 15일 김일성과 쉬티코프가 지원군 총부에서 회담을 가졌다. 가오강도 션양에서 도착했다. 펑더화이는 직설적으로 쌍방의 군대에 대한 통일적 지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가오강도 한반도가 협소하기 때문에 통일된 지휘가 없으면 전투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슈티코프는 중국군이 통합지휘를 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의사를 표시하면서, 인민군이 최신 소련 장비를 사용하면서 패배한 것을 비판하고, 반대로 지원군이 열악한 장비로 대량의 적군을 섬멸한 것을 찬양했으며, 중국측의 정확한 지휘에 어떤 의심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인민군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지휘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평더화이는 김일성, 쉬티코프와 3인 소조를 결성해 군사문제를 협상하고 통일적 지휘를 책임지자고 제안했다. 김일성은 여전히 가부를 언급하지 않았다. 쉬티코프는 모스크바에 이문제에 대한 답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부를 표시하지 않았다. 결국 제2차 전역이후 논의하기로 했다. (388, 주 90)
마오쩌뚱은 모스크바의 의견을 요청하기로 하고 11월 13일 스탈린에게 전보를 보내 “김일성 동지와 쉬티코프 동지가 전방에 상주하기를 희망하면서, 김일성, 쉬티코프, 펑더화이로 구성된 3인 소조를 결성하고 이 소조가 부대편성, 작전, 적의 후방진입 및 이와 관련된 수많은 정책들을 포함한 군사정책의 결정을 책임지고 상호간의 의견을 통일시켜 전쟁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펑더화이의 제안을 전달했다.(387, 주91 항미원조전쟁사 제2권 pp.167-168)
한편 이미 스탈린과 마오쩌둥간에는 북한군에 대한 중국의 지휘에 대해 사전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 언급한 전문에서 마오쩌뚱은 “인민군과 지원군이 효과적으로 협력하여 전투를 수행하고, (스탈린) 동지의 제안처럼 상당수의 조선군과 지원군이 혼성으로 편제(조선군의 편제는 그대로 유지, 여기서 괄호는 션즈화의 해석인지 원문에 있는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된다면 전투에서 승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전문의 내용을 엄격하게 따져보면 이미 스탈린이 먼저 지휘권 통일에 관한 언급을 마오쩌뚱에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북한의 소련 군사고문이 인민군의 작전지휘능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스탈린의 결정에 작용했을 수도 있다.
11월 17일 마오쩌뚱은 평더화이와 가오강에게 전보를 보내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스탈린이 이미 회신을 보냈으며 중국 동지가 통일적 지휘를 하는데 찬성했으며, 김일성과 쉬티코프에게도 전보를 보낼 것”이라고 하면서 “중국 주재 소련 총군사고문인 자하로프도 통일적 지휘를 찬성했다고 전하는 한편, 펑더화이에게 김일성의 반응을 살피라고 지시했다.(389, 주92)
마오쩌뚱과 스탈린이 서로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김일성은 소외되었다. 김일성은 중국군 파병과정과 조중연합사창설과정에서 마오쩌뚱과 스탈린의 협의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것이다.
10월 1일 파병을 요청하는 스탈린이 마오에게 보내는 전문에서는 당시 김일성이 어느정도 소외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동지들에게 이 일을 언급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이야기할 계획이 없는데, 조선 동지들이 이 소식을 들어면 매우 기뻐할 것이다.”(381, 주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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