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후르시쵸프가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난한 이후 조선공산당 내에서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3월 19일 소련대사관이 보낸 후르시쵸프의 ‘개인숭배 및 그 결과’에 대해 보고 받은 김일성은 소련의 방침에 따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노동당 내 실제업무에 진지하게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424, 주 178, 이바노프의 일기 1956년 3월 19일, ЦХСД, ф. 5, оп. 28, д.411, лл.164-165) 그러나 실제적으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김일성 개인 숭배와 관련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956년 4월 23-28일 조선노동당은 제3차 대표자대회를 개최했다. 주요 안건은 인사문제였다. 김일성 반대파 세력을 확실하게 제거하고자 했다.
김일성은 박헌영 등 국내파 지도부에 대한 비판과 기타 ‘당을 분열시키는 종파주의 활동’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다. 소련공산단 20차 당대회 노선과 집단지도 문제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발언을 요구했으나 무시되었다.
대회는 중앙위원회의 대규모 조정을 통해 김일성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지지를 확보했다.
71명의 후보중앙위원 중 43명이 새로 선출되었고 28명이 유임되었으며, 45명의 후보중앙위원 중 43명이 새로 선출되고 2명만 유임되었다.(425, 주181, 서대숙, 북한의 영도자 김일성, pp.128-130)
회의중 언론의 김일성에 대한 찬양이 고조되었고 소련공산당의 개인숭배 반대와 같은 지침은 무시되었다. 오히려 대외기간중 당내에 개인숭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당을 약화시키는 행동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426)
회의는 소련파의 자격을 문제 삼았다. 김일성은 소련에서 귀국한 일부 간부들이 조선국적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그들을 중앙위원으로 선출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 결과 그런 사람들은 모두 배제되었다.
대표자 대회이후 개최된 중앙상무위원회에서 김일성은 다시 소련파 간부들이 종종 소련대사관의 상황만을 고려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기밀을 보장하고 규율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외국인과 모든 연락은 외교부와 대외무역부를 통해서만 진행할 수 있도록 즉시 규정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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