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ffingtonpost 2015년 7월 20일 한겨레 박미향 기자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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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제이티비시의 <냉장고를 부탁해>가 방영된 뒤 온라인에서는 때아닌 레시피 표절 논란이 불붙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맹기용 셰프가 오징어를 갈아 소시지처럼 만들어 ‘오시지’라고 이름 붙인 요리 레시피가 파워 블로거 ‘꼬마츄츄’의 요리법을 베꼈다고 누리꾼들이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틀 뒤 꼬마츄츄가 자신의 블로그에 “(맹기용씨의) 레시피를 살펴보니…제가 만든 레시피는 엄연히 다르다”라는 글을 남겨 논란은 한풀 꺾였다.
짜고 맵고 시고 단, 복잡 미묘한 여러 가지 맛을 섞어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맛을 만드는 일은 창작의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레시피를 누군가 도용한다면? 허락도 받지 않고 그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돈을 번다면? 레시피도 문학이나 음악처럼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로즈메리 캐럴은 미국 레스토랑 그룹인 ‘토메이도-토마흐도’(Tomaydo-Tomahhdo)의 조리법 책 <토메이도 토마흐도 레시피 북>의 저자다. 캐럴은 전 비즈니스 파트너인 래리 무어가 음식출장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요리책과 유사한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자 토메이도-토마흐도와 함께 무어를 지난해 제소했다.
캐럴은 저작권 침해와 ‘영업비밀의 부정이용 및 부정경쟁행위’를 주장했다. 대표적인 메뉴로 ‘치킨샐러드샌드위치’가 거론됐다. 조리법은 같지만 원고와 피고가 사용한 재료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캐럴의 샌드위치는 페스토 치킨 샐러드, 프로볼로네 치즈(이탈리아산 치즈의 한 종류), 붉은 양파, 상추, ‘토메이도’와 페스토 마요네즈를 바른 포카차 빵이 재료다. 무어의 샌드위치에는 프로볼로네 치즈 대신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다. 페스토가 빠진 마요네즈가 재료이고 피칸(견과류 일종)과 사과가 추가됐다.
오하이오북부연방지방법원은 이 샌드위치 등을 사례로 지난 1월29일 캐럴이 레시피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레시피는 어떤 결과물(음식)을 얻기 위한 기능적인 설명에 불과하고 미국저작권법 제102조에 의해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결하면서 레시피는 “창작적 방법에 의해 표현되어지는 경우에 한하여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레시피 자체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지만 레시피를 표현한 해설이나 묘사, 그림 등은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라는 소리다.
<미술가의 저작인격권> 등의 저자인 법무법인 케이씨엘의 구본진 변호사는 “저작권은 아이디어(레시피)와 표현의 분리가 기본원칙”이라며 “아이디어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것을 활용한 표현은 보호 대상”이라고 한다. 재료 1g만 바뀌어도 다른 음식이라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 레시피다.
일찌감치 식문화가 발달한 영국이나 프랑스 등도 레시피에 관해서는 미국과 비슷한 인식수준이다. 이욱정 <한국방송>(KBS) 피디는 “서양에서 레시피 저작권의 정의는 모호하다. 셰프들 세계에서 레시피 모방은 관대한 영역이며 더 나은 창작을 위한 단계라는 인식이 많다”고 한다. 오히려 출처를 밝힌 요리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고급 레스토랑인 팻덕의 셰프 헤스턴 블루먼솔은 우연히 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가 자신의 대표 메뉴를 발견하고 놀랐다. 하지만 그 메뉴에 ‘블루먼솔 오마주(존경)’가 달려 있어 오히려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고 직접 쓴 신문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다. 세계 미식가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유명 셰프들도 서로의 음식을 모방한다.
샘표식품 장프로젝트팀 최정윤 팀장은 “벨기에 유명 요리사의 인기 음식을 프랑스 미슐랭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 메뉴판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과거 레시피를 단순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셰프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창조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창조는 모방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관점이 대세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리법이 같아도 결국 최종 맛은 셰프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다.”
국내 셰프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실제 레스토랑이나 식당업계의 종사자들은 레시피 보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다. 한식당 ‘권숙수’의 오너 셰프인 권우중씨는 “조리라인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만두면 도리가 없다. 도덕적인 문제다”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창업시장에서 레시피를 다 꿰고 있는 요리사들의 영입전쟁이 종종 치열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레시피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하나 막상 자신이 몇 달을 고생해 만든 레시피에 타인의 이름이 붙은 채 회자되면 속이 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일까? 요리연구가 이보은씨는 몇 년 전에 한 여성지에서 자신의 레시피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정말 속상했지만” 방송이든 페이스북이든 일단 세상에 공개되면 ‘내 것이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오히려 활용하기로 했다. ‘이보은이 효시’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도록 에스엔에스(SNS)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레시피를 더 자주 올렸다. “저만이 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았다. 검은콩 콩국수 레시피를 올리면서 할머니가 콩을 불리지 않은 채 국수를 만들었던 사연을 적었다”고 한다. “담근 지 15일이 지난 오이지는 물러지기 쉽다. 방지하기 위해 물엿 등을 뿌리고 냉장고에 넣으면 쓴맛이 사라지고 단맛이 올라온다는 정보를 올리면서 할머니가 알려준 노하우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외의 스타 셰프들은 레시피를 개발하자마자 출간한다.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이다. 특허 출원을 하거나 직원들에게 영업비밀 준수 서약서를 받는다거나 소송을 하는 것은 적극적인 방법이다. 레시피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지만 독특한 공정과정이나 기술, 디자인 등은 대상이 된다.
2011년 ‘찰떡쿠키’ 제조업체인 청우식품의 특허가 무효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소송은 ‘초코찰떡파이’를 만든 삼진식품의 연구개발부장이 경쟁업체 청우식품으로 전직하면서 ‘원재료 및 배합비’ 등의 개발정보를 그대로 가져가 ‘찰떡쿠키’를 제조하고 특허까지 받으면서 벌어졌다. 삼진식품은 개발부장을 포함한 전 직원에게 영업비밀준수에 관한 서약서를 받은 바 있다. 구본진 변호사는 “특허를 받기 위해서는 ‘신규성’과 ‘진보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법원은 청우식품의 특허가 ‘진보성 없는 발명’이라고 봤다.
‘서울연인 단팥빵’을 운영하는 슬로우푸드코리아는 2013년 직원이 퇴사한 후 다른 이와 동업해 유사한 단팥빵 매장을 만들자 부정경쟁방지법상의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제소해 7월 중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슬로우푸드코리아 쪽은 레시피는 쟁점이 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로고, 간판, 지하철 역사 안이라는 독특한 입지, 포장 디자인 등을 모방했다고 주장한다. 식품기업들은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하는 편이다. 씨제이푸드빌은 한식뷔페 ‘계절밥상’의 개발 메뉴 수십종의 조리법이 담긴 <계절밥상 레시피 북>을 저작권위원회에 저작물로 등록했다.
지난 5월27일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는 레시피 저작권에 관련된 학술발표회도 열었다. 레시피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학술적 영역에서도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학회에서 주제 발표에 나선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차상육 교수는 “레시피를 포함한 식당의 인테리어, 메뉴판 등 음식문화와 관련한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 분쟁이 향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참고자료 <레시피와 지적재산권 쟁점-저작권법을 중심으로>(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차상육 교수)
글 내용에는 가급적 에시피는 싣지 않고, 요구하는 분께 댓글로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하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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