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하루 하루가 그냥 사라져 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선명했던 기억이 흐려지고, 얼마 되지 않은 일들 조차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집에 오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움직임 외에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 나에게 일어나 앉아 매일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기장을 펼치고 앉아도 특별히 쓸 말이 없었다. 누구를 만나 뭘 먹었는지의 나열일 뿐.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세 줄 쓰기.
- 가장 나쁜 일
- 가장 좋은 일
- 내일 할 일
이렇게 세가지로 오늘을 정리하는 것이다. 커피빈에서 연말 이벤트로 받은 다이어리에 그렇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당연히 매일 쓰지는 못했지만.
의도한 바와 달리 세 줄 일기는 나에 대한... 일종의 빅데이터가 되었다.
나는 어떨 때 화가 나고, 어떨 때 행복한 지.
나는 주로 출근길에서 불행했다. 택시를 타지 않기 위해 쫓기듯이 일어나 뛰어 나가는 아침, 매너 없는 지하철 메이트가 대체로 하루 중 나에게 가장 격정적인 분노를 가져다 주었다. 차를 사면 조금 나아질까… 역시 퇴사가 답인 것 도 같다. 마찬가지로 회사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후회와 멘붕, 분노 등의 감정이 주를 이루고 있어 쩌리 사원의 회사생활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다.
참 의외였던 것은 내가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한 순간을 행복했던 순간으로 가장 많이 꼽았다는 점이다. 나는 평소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런 결과는 조금 의외였다. 내게 참 많은 행복과 기쁨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가족, 친구들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잘해줘야겠다.
또 소소하고 정성적인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 날씨 좋은 날의 소풍, 평소보다 맛있었던 모닝 커피, 퇴근 후에 서점에서 보냈던 시간 같은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매일 보던 출근 길의 나무들이 예뻐서 행복할 때도 있다.
놀라운 점은 행복했던 순간 목록에 쇼핑에 관한 내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까먹고 안 쓴 것일 수도 있지만… 지속적인 소비와 쇼핑은 삶에 거의 유일한 낙이라고 생각했는데 행복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치만 여전히 쇼핑도 큰 행복이다.)
성취는… 지난 1년간 삶에서 별다른 성취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ㅋㅋㅋ
이렇게 일기를 쭉 훑어 보니 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함은 물론이고, 출근이나 출근길의 지하철 외에는 대체로 크게 불행하거나 화 나는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제법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게 됐다.
아무튼, 기록이라는 목적 외에도 스스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세 줄 일기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세줄일기라, 좋은 것 같아요!! 때로는 생각할거리도 주는 것 같고:-) 도전해볼만한데요ㅋㅋ근데 슬리님 주로 먹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시네요ㅋㅋㅋㅋ특히 커피ㅋㅋㅋ
ㅋㅋㅋㅋㅋ 그런가요?ㅋㅋㅋ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먹는 커피가 저의 행복이었나봐요 ㅋㅋ
역시 퇴사가 답이었군요. ㅠ
저도 일기를 쓰는데 몇 년 지난 일기를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들고는 해요. 이때 정말 힘들었지 혹은 즐거웠지. 라든지요. :)
근데 가만보면 즐거웠던 것도 특별한게 아니더라고요. :D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추운 날 감기조심하세요!
맞아요! 의외로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에서 오는 행복이 많은 것 같아요!
세줄 일기 굉장히 좋네요! ㅎㅎ
어렵지 않으면서도 삶이 다른 방식으로 정리될 것 같아요 :)
맞아용 극과 극을 정리해봄으로써 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출근길에 불행한 분들 많을 거에요-
지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그 와중에 만나는 교통체증이나 비매너의 사람들까지.... 여유있게 출근하자니 그럼 잠을 포기해야 하구요(절대 포기 못해요 ㅠ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매일을 기억할 수 있어서 3줄 일기 참 좋은 것 같네요 ;)
예 맞습니다. 아침 잠은 절대 포기할 수 없읍니다. ㅋㅋㅋ 그래서 저는 출근이 하루 중 가장 큰 미션처럼 느껴질때가 많아요! 약 6시간 뒤면 또..^^
우리 존재 화이팅😂
세줄일기 괜찮은 것 같네요! 무언가를 사서 느끼는 행복보다 소소한 것에서 더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무언가를 사고 하는 경우에는 제가 행복감을 느낄 것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감안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샀을 때는 그냥 그런 것 같더라구요. 오히려 사는 것을 결정하고 사기 직전까지 설레일 때가 좋은 것 같아요. 소소한 것은 기대하지 않고 찾아오니 더 기쁜 것 아닐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찾아온다니 너무 좋은 얘기네요. 내일은 또 어떤 행복이 찾아올런지!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바래요:D
저는 겨울에 샤워할때가 가장 불행해요 ㅠㅠㅋ
저도 뭔가 연필을 잡고 끄적대는것이 왜이리 좋죠..?ㅎㅎ저도 다이어리쓸때 한번해봐야게써용 ! ㅎㅎ 참좋은것 같아요~~
가장 나쁜 일
가장 좋은 일
내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