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못쓴] 노숙자 소굴에 들어갔다

in #kr7 years ago (edited)

찌든 땀과 썩은 오물이 뒤섞인 냄새가 콧구멍을 찌르듯 파고들었다. 그것은 후각이라기보다는 촉각에 가까웠다. 어떻게 인간의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날 수 있을까. 소름이 끼쳤다.

2016년 초여름, 나는 서울 한 시장통에 있는 노숙자 소굴을 취재했다. ‘OO식당’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술병, 뭔가로 가득 찬 검은 비닐봉지 등이 식당 주변에서 나뒹굴었다. 파리 떼가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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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ixabay

오전 9시 30분 식당에 들어갔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드럼통을 뒤집어 놓은 탁자 세 개, 등받이 없는 의자 열 몇 개가 있었다.

9명의 사내가 흩어져 술을 마셨다. 탁자마다 소주병 서너 개가 놓였고 가운데 가스버너에서 건더기가 거의 없는 찌개가 끓었다. 가게 깊숙한 곳에 혼자,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20개의 눈알이 나를 향했다. 떡진 머리, 빠진 앞니, 누구에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 퉁퉁 부은 눈, 헤진 옷... 9명 사내의 행색은 제각각이었는데, 또 다 똑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가슴을 부풀렸다. 눈알들과 악취를 무시하고 평소보다 큰 보폭으로 가게 안쪽에 노파에게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OOOO의 A 기자입니다.”

노파는 이 가게 주인이었다. 뽀글뽀글 볶은 노파의 머리 아래로 색이 바랜 눈썹 문신이 보였다. 흰자가 충혈돼 벌겠다. 손톱 사이는 때가 끼어 새까맸다. 그가 어떻게 이런 데를 다 왔느냐고 물었다.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

여기가 노숙자 소굴이라는 주변 상인의 원성이 자자해서 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노숙자 분들 상대로 좋은 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노파는 이렇게 말했다. “‘노숙자 대장’의 권유로 밥을 팔게 됐다. 서울 OOO, OOO에서 식당을 하다가 가겟세가 올라 5년 전 여기에 왔다. 장사가 안됐다. 어느날 노숙자 대장이라는 사람이 왔다. ‘200만원만 주면 손님을 끌어다 주겠다’고 했다. 돈을 줬다. 진짜 노숙자들이 몰려들었다. 다른 가게가 국밥을 5000원에 팔 때 나는 3000원에 팔았다.”

노파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제 가게를 그만하고 싶다. 잘해주니까, 오히려 나를 이용한다. 외상값 갚는 사람이 10명 중 1명이나 될까 말까 한다. 교도소에 가거나, 도망가면 외상값 못 받는다. 도중에 죽은 사람도 있다. 배신감이 든다.”

취재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사내 한 명이 노파를 향해 “뭐 마실 거 좀 드려야지”하더니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캔에 든 식혜를 꺼내 주었다.

또 다른 사내는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고,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국정원이 어떻게 했다고 말했다. 정확한 멘트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 식혜를 가게 앞에 내려놓았다.

전날 만난 인근 음식점 사장 B는 “OO식당이 생긴 뒤로 손님이 줄었다. 주변에 노숙자가 끊이지 않는다. 노숙자들이 골목에 노상 방뇨를 한다. 골목 쪽 출입구을 열지 못한다”고 했다. 또 다른 사장 C는 “OO식당 주인이 가게 문 닫는다는 건 습관처럼 하는 말”이라고 했다.

사장 D는 “OO식당 주인은 눌 술에 취해있는 거 같다. 자꾸 어울려서 그런지 노숙자처럼 변했다. 술에 취한 노숙자가 우리 가게에 불쑥 들어온다. 해코지 할까 봐 겁난다”고 했다.

OO식당 사장과 주변 음식점 사장의 입장을 다 담아서 기사를 썼다. 완전히 객관적이었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내 기사는 주변 음식점 사장 쪽으로 조금 기울었던 것 같다.

취재 중에 만난 관할 경찰서 관계자는 “OO식당이 주위 가게에 피해를 준다는 것은 안다. 딱히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어서 손 쓸 수 없다”고 했다.

손 쓸 수 있었다. 기사가 나가고 경찰과 관할구청에서 OO식당에 들이닥쳐 가게 문을 닫게 했다고 한다. 아마 식품위생법 등으로 걸면 걸릴 것이었다.

OO식당 주인이 내게 전화했다. 그는 “왜 멀쩡하게 장사하고 있는 데 와서 분란을 일으키느냐, 청와대에 탄원서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사태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차못쓴]은 차마 쓰지 못한 이야기, 차마 기사화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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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감이 묻어나는 취재 내용이네요... 다들 꺼려하는 취재지 일텐데...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기삿거리가 없어서 코너에 몰리다보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 심정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저희가 항상 좋은정보 좋은기사 읽는거 같네요!!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노숙인들도 먹을 수 있는 식당, 술 마실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테지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도 맞겠지요. 무엇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생각하기 쉽지 않네요... 쓰신 기사 보고 싶은데 링크좀 알려주셔요ㅎㅎ

옳은 말씀입니다. 참 어렵더라고요. 기사 원문보다 이쪽이 훨씬 자세합니다. 이것만 보셔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저도 거의 5년 정도 서울역 센터에서 자원봉사 등을 했었는데, 당시 늘 맡았던 그 코를 찌르는 냄새가 느껴지는 느낌입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6440

와 본인이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그것도 가까이서 접하셨겠네요. 단편적인 인상을 늘어놓은 제 글이 부끄럽습니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조금 떨어져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써 내시잖아요. 멋진 스케치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저도 취재기 뒤적이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아무쪼록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난함과 착함이 항상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님을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의 가치의 조율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가난=선, 부=악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회에 나와서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가치의 조율... 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숙자 전문식당으로 거듭나서 여기서 노숙자들에게 좀 더 쾌적하고 저렴하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나 정부기관에서 좀 더 실질적이고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훈훈한 사람 냄새 나는 사회를 위해서

노숙자 전문 식당, 노숙인들이 찾고 싶어하는 식당 등이 마련돼야 하겠네요. 고견 감사합니다!

아이구.. 마지막이 조금 씁쓸하네요 ㅠㅠ 그렇다고 누구의 편도 들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구요.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본 느낌입니다 ㅠㅠ

맞습니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제 영역을 벗어난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객관적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은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저 먹먹해짐이 느껴지는 말이네요....

비겁한 말이지요...

내용은 없고 제목으로만 클릭을 유도하는 인터넷 세상에 어느 신문이 이런 기사를 올려주겠습니까.

더 분발해서 좋은 기사 쓰고 좋은 제목 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격 르포군요 취재라는건 정말 보통일이 아닌것같습니다ㅠ 기사가 나야 움직이는 공권력...방치되어있는 노숙자들.
생각할거리가 많아지는군요

다들 각자 분야에서 보통일이 아닌 일들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경찰은... 저 기사 나가고 관할 경찰서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참 힘들긴 하더라구요. 서울역 근처를 지날때마다 만나게 되는 노숙자분들을 마주치게되면 의연해지기란 참 어려웠습니다.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 냄새를 견디기 쉽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자마자 옷 다 빨고 목욕했어요.

글을 읽다보니 가슴이 아파옵니다ㅜㅜ

세상에 명쾌하게 결론 낼 수 있는 일만 있다면 좀 덜 복잡할텐데요 ㅠㅠ

브라질 민중식당 이야기도 생각나고 하네요.. 답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일입니다.

브라질 민중식당은 잘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찾아보겠습니다. 덕분에 또 하나 배웠네요. 감사합니다. 노숙자 문제 어렵지요. 차마 기사화 할 수 없는 얘기들도 많고.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민중식당 이야기는 이 기사 에서 보았습니다. 기사로만 보아서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힌트는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엄청나고, 그중에서도 요식업 비중이 높으니... ㅠㅠ

와 브라질에서는 굶어 죽을 걱정은 없겠네요. 아... 총 맞아 죽을 걱정이... 종국에는 치킨집이라는데 저도 그 테크트리를 타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음지를 취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일 같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취재하고 어떤 위치에서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쓸 것인가...
예전에 동자동 쪽방촌 연재기사를 쓴 Y사 기자도 생각이 나고, 영등포 사창가 연재기사를 쓴 H사 기자도 생각이 나네요.

긴 호흡으로 써내려간 그 기사들 저도 읽었습니다. 제 것보다 훨씬 훌륭하고 깊이 있더라고요.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오더라고요.

아...그 식당의 냄새와 매케한 기운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참 좋습니다.
저는 그 식당이 문 닫은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억을 더듬어도 역시 그때 그 냄새는 강려크 했습니다. 그 주인 할머니는 뭘 하고 계실지 궁금해요. 가끔 제 욕을 하시겠지요

그러게요...
어떤 입장에도 설 수 없고, 완벽하게 객관적이게도 되지 않는 상황을 글로 쓰기란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모두에게 죄책감같은 것이 드는 사회적 문제를 접할 때...
우린 참 답답하지요....
토닥토닥토닥...

다독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막상 현장에서는 기사 쓰기 바빠요. 나중에 돌아보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좋은 기사 써야 할 텐데. 뭐가 좋은 기사일까요.

아름다운 일만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 배운 바로는 기사는 신속, 정확, 공정한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배웠던 거 같아요..ㅋ

차마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군요... 그 노숙자분들을 위해서나 주변 상인들을 위해서나 어떤 제도적 조치가 필요할텐데 말이죠 ㅠ

물리적으로 제도적 장치는 충분한데 노숙인들의 심리적인 니즈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분들이 겉도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휴 잘 모르겠네요.

생생한 글 잘 읽었습니다. 더 많은 무료급식소가 생겨야하려나요?ㅜㅜ 양쪽의 입장이 다 이해되는 상황이라 애매한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팔로우하고갈게요!

감사합니다. 무료급식소 문제 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어렵습니다. 해법은 저보다 고매하고 현명하신 의원님들께 토스하겠습니다

좋은 글 내용이 알찬 글. 제 부족한 어휘력으로는 정신없이 몰입해서 읽은 감상을 전달하기가 힘드네요.
잘읽고 팔보&리스팀하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읽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객관적 입장'이란 것이 어떨때는 참으로 감옥같이 느껴지실 때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드물게 칼럼도 쓰는데 그때는 객관의 감옥에서 잠시 탈옥하고는 합니다. 이 업종 종사자에게는 꼭 필요한 굴레인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 이래서 어려운 게 살 수록 많아지는 거 같아요.. 어릴 땐 모든 게 단순했는데....

그죠. 대학생 땐 칼로 무 자르듯 선과 악이 명확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게쒀여...

어릴적에 서울역 지하도에서 외국인들이 노숙자들을 사진찍는걸 본적이 있는데 막을수도 없었고...좀 씁쓸했던 기억이 나네요....

헉 씁쓸하네요. 이좌식들아 사람은 구경거리가 아니란 말이다!

전에 거리 벤치에 노숙자들이 잠을 잘 수 없도록 중간 중간에 손잡이를 만든 걸 보고 어떤 분이 한 말씀이 생각나요. 저렇게 노숙자를 몰아낸다 한 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회 어딘가의 더 어둡고 깊은 곳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겠느냐구요.
저 식당이 없어진데도 저 분들은 또 다른 곳으로 가실테고, 그렇다고 주변 상가에 피해를 주는 저 상황을 그대로 둘 수도 없고... 하아...
결국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할텐데- ㅠㅠ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어렵습니다 모르게쒀여... 어릴 땐 노숙인들이 선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렵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글 멋지군요. 관념이 아닌 사실의 열거 자체로 힘이느껴지네요. 언젠가 꼭 르포를 써보고 싶습니다. 리스팀합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쓸 땐 그럴듯하다 싶은데 돌아서고 보면 미흡한 거 투성이 입니다. 언젠가는 적어도 제눈에 천의무봉한 글을 쓸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