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에세이] 잘 가, 이제는 아프지 말자.

in #kr-travel7 years ago

잘 가, 이제는 아프지 말자.

오랜만에 나의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먼 길을 떠나게 된 친구를 가기 전에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어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작은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녀다. 너무 반가워 와락 안았다.

“보고싶었어”

그녀는 따뜻한 미소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방에 비치되어 있는 넓은 소파에 앉았다. 나는 그녀를 뒤따라가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녀가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이제는 그녀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떠나는 그녀를 이제는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른다. 그녀와 오늘 나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심한다.

“혹시 괜찮다면, 너가 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 해줄 수 있어?”

그녀는 덤덤한 얼굴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기억들, 순간적으로 들려온 비명소리. 주방 식탁을 밝혀주던 주황색 등불 할머니에게 안겨서 엉엉 울던 그녀, 엄마 아빠의 소리 지르는 소리, 가족들의 한숨. 그녀의 지난날이 영화필름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조금의 감정도 못 느낄 정도로 덤덤한 얼굴로 그녀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어. 이 세상에서 내가 처음으로 기억나는 장면은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목 놓아 울던 기억이야.”

엄마 아빠가 각자의 길을 선택한 뒤, 짐 덩어리로 전락해버린 그녀는 기나 긴 가족회의 끝에 큰어머니가 받아주셨다. 그때부터 그녀의 엄마는 큰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의 큰어머니는 부족함 없이 그녀를 키워주셨다. 단 한 번도 큰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어린 날.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지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이 세상을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어린 날 그 모든 것을 버텨내기엔 상처가 깊었다. 늘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 부딪쳐야만 했던 지난 날.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가족이라는 테마는 스스로에게 금기어가 되어야만 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는 가족의 그림은 그저 그녀에게 실현될 수 없는 현실이자 절망이었으니까.

“있잖아. 나는 말이야 가족들이 나를 바라보던 슬픈 눈이 싫었어.
그래서 더욱 더 아무렇지 않은 척 밝게 행동했지.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가족이야기를 할 때면 아무 말 없이 들어야만 하는게 참 힘들었어.
그래도 나는 이상한아이, 불쌍한 아이가 되기 싫어서
악작같이 스스로를 숨기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문제없는 가정 속에 자라난 아이처럼 행동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도 내 자신을 꾹꾹 눌러왔는지 모르겠어.”

“사실 말이야 나 많이 힘들었어.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너마저도 아플까봐 차마 말할 수 없었어.”

오랫동안 그녀는 지난날의 상처를 혼자만이 안고 살았다. 나는 뭐가 무서워서 그녀의 지난 상처를 어루만져주지 못했을까 왜 그리도 오랫동안 그녀 혼자 아파하게 방치해 두기만 했던 것일까. 그녀의 지나간 상처는 이제 와서 내 가슴을 후벼팠다. 참으로 부질없고 늦기 짝이 없다.

“엄마는 나에게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았어. 엄마가 있었음에도 나는 엄마를 그리워했지.”

그녀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해와도 같은 존재였다. 매일 멀리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국 가까이 닿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그녀가 엄마에게 느꼈던 것은 미움과 분도보다 끓임 없는 사랑의 고갈이었다. 끝이 안보이던 사막에 끝에서 목마름 호소하던 그녀. 결국 그녀는 사막을 떠나기로 했다. 받을 수 없는 사랑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너무 어린나이에 깨달아 버렸다.

그녀는 이제는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이제라도 떠나기 전에 나에게 말을 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와락 안았다.

“내가 어른이 되고 세계여행을 떠난 후에 나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어.
여행하며 지난날의 상처를 꺼내어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했거든.
그래서 이제는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았던 상처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돼. 이제 나 맘 편히 너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나에게 이별을 선고했다.

나는 오늘 또 다른 나였던 내 안에 그녀를 놓아준다. 그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그날 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지난 날 나 대신 아픈 시절을 보내주어서,
버텨내 주어서 고마워. 행복해 안녕“


사월愛 / @ronep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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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면서 울컥하게 되네요. 멋진 내용 그리고 사진 잘보고 갑니다!
팔로우도 하고 갑니다!

:-) 글 깊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팔로우 감사해요!

그녀의 이야기인듯,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꼭 엄마가 아니라도 누구나의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갈애는 늘 존재하는 것이니까ㅎㅎ
아픔을 꺼내어 직시하고 충분히 아파할수 있는 용기에 박수와 응원을 잔뜩 동봉합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별이네요♡

제가 했던 이별중 가장 아름다웠던 이별이었던 것 같아요.
제 안에 또다른 자아에게 감사를. 행복을 빌어주었어요 :-)

묵직한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글입니다....
솔직한 자신과의 대면...
저도 그럴수 있을런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스스로와 이렇게 진실되게 마주하기 까지 정말 오랜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 여행중 털어낼 수 있어서 참 감사했어요.
제글 마음 깊이 느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글이네요
친구분께서 자신을 깊이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큰 위로가 됐을거라 생각해요 ^^

ㅎㅎ 그 친구가 또다른 저의 자아지만 이제 아픈 자아랑은 이별했으니
저는 가볍게 털고 일어나 힘을 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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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햐.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바라보는것도 꽤 큰 용기가 필요한일이죠
저는 매번 외면만하고있어요 ㅠㅠ

저도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참 오랜시간을 말이지요.
아픈줄도 모르고 숨기며 살아왔던 시간 여행을 통해서 치유했던 것 같아요.

마음으로 꼭 안아드리고 갑니다.
잘 이겨내 줘서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매순간 요동치던 시간이 지금은 참으로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간마저 사랑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읽고나서는 마음이 조금 무겁고 뭉클해졌습니다...힘내요!!그리고 이제는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요즘에는 좋은 일만 가득한 것 같아요. 저는 비록 백수에 잘나지는 않았으나 온전히 제자신에 대해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행복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세요. 여행도 너무 멋지고 글솜씨도 너무 멋지십니다

글을 잘쓰기 위해 매일 쓰고 읽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좋게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내 얘기 조금 해도 될까요?
친정에서 요절하신 작은 아버지가 남긴 사촌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결혼해서는 조카들을 키우며 그 아이들의 결핍을 메워주고
혹시라도 있을 그늘을 비추려고 노력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느 날 집안의 외진 구석에 혼자 있는 것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떨어져 나갔고
아무 연락 없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마음을 조리다가
얼굴을 보면 왜 그렇게 화가나던지요.
찢어지는 마음에 약을 바르면서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하고
이제는 다 커서 예쁜짓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맘 넓은 사람 만나야 한다는 말은
빠뜨리지 않고 하는 단골 메뉴랍니다.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 제마음을 꾹꾹 두드립니다.저에게 큰엄머니의 존재가 조카분들에게 @jjy 님이셨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이렇게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어린시절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던 큰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jjy 님에게 감사드려요. 조카분들 사랑으로 품어주셔서요. 갑자기 눈물이 날것 같네요 ㅠㅠ...

사월애님! 따뜻하게 안아드리고갑니다!

안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온기 깊이 담아내겠습니다. :-)

사월애님!
진정 용기있으신분 같아요!♡

자신을 마주하기까지 2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네요. :-) 용기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적어주셨지만 울림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내용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경험을 하네요...
진심을 담은 ...글이었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