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위대한 '여러 원리'가 우리를 어떻게든 무엇에 얽어매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방식을 순전히 나에게 맡기는 그런 상황 속에 처하여 있게 됩니다...중략...
결정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영웅에게는 언제나 무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마치 죽음 앞에서처럼 이런 사실의 적나라함과 대결하고 있습니다...중략...여기서 사람은 맞서는 것 이외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 상황은 그가 전체로서 반응하도록 도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이미 만들어진 도덕률의 조목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된 경우일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그는 절대적인 것과 진지하게 대결하며 통속적인 도덕규범의 조문과 법률의 보호자가 비난하는 길을 터놓으며,
여기에 그의 가장 개인적인 윤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자기가 자기의 가장 깊은 곳의 본질과 소명, 그와 함께 절대자에 아마 한 번도 이처럼 성실해본 적이 없었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와 全知者만이 그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자면 안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단하는 자와 비난하는 자는 다만 밖에서 봅니다.
(융 기본저작집 9, 인간과 문화, p141~142, 솔)
저도 심리학 공부한다고
융 책을 몇 권 사서 읽었는데
참 어렵더라고요.
많이들 그렇게 느끼는 듯 합니다. 원전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일부러 말을 어렵게 하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구요. 다만 기본저작집이나 융원구원에서 감수한 번역본을 보면 번역에 꽤 공을 많이 들였다는 점과 글을 쫒아가면서 심지어는 한 문장도 놓칠 수 없을 정도의 치밀함과 치열함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해서 제 경우는 사실 작심을 하지 않으면 시작하기가 어렵더군요.
통속적 도덕율. 개인적도덕율.절대자의 요구 차이가 있을까요? ㅎ
인용문만 이렇게 필사해서 올린 것이 뜬금 없기는 했습니다. 뭔가 울림은 있었지만 정리할 깜냥이 안 되었습니다. 몇 차례 망설이다 올렸는데 @raah님의 눈에 딱 걸린 느낌입니다. 덕택에 나름 저를 스쳤던 울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융전문가도 아니고 심층심리 전문가도 아닙니다. 더구나 융 관련된 학회 한 번 참석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관심으로 관련 책을 읽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은 공인된 융학파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말도 말하는 사람의 진의가 전달되는데 한계가 있는데 글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해서 같은 책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른 모양입니다. 융의 기본저작집은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저같은 문외한은 매번 그저 나름으로 새롭게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인용한 내용은 기본저작집 9권, 인간과 문화 중,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양심'이란 논문 다음으로 이어지는 '분석심리학에서의 선과 악'이란 논문의 일부입니다. 시종일관 융은 철학이나 신학이 아닌 심리학의 입장에서 환자들과 했던 작업을 근거로 경험과학자의 입장을 끈질기게 유지합니다.
정작 정리는 시간도 걸릴 듯 하고 짧지 않을 듯 하여 열심히 해보고 되는데로 올려보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