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없이 많이 부른 애국가에 '하느님'이 나온다. 하느님은 하늘님에서 'ㄹ'이 빠진 말로 '천신'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 때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애국가와 교가를 외웠다. 태극기 그리기를 하고 한글을 배웠다. 1학년이 하는 게 그게 다였던 것 같다. 내가 워낙에 멍청이라 초등학교 입학 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래도 신의 존재에 대해 사유를 한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냥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엄마한테 안 혼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전부다. 아무래도 유딩시절부터 치매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댁에 맡겨지면서 아마도 처음 교회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살던 서울시 동대문구(지금은 중랑구) 상봉동 쌍굴다리 안쪽의 기찻길 옆에 살았고, 그 기찻길 어딘가에 허름한 교회가 하나 있었다. 2층 상가 건물이었고 교회는 2층에 있었는데, 초등학교 교실 정도 만했다. 옆짐 아이가 그 교회에 다니기에 따라 다녔는데, 내가 기억하는 첫 교회다. 교회 이름도 기억한다. '동목교회' 거의 치매성 환자인 내가 그 교회 이름을 왜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교회엔 매주 주일이면 어김없이 갔다.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집에 있어봐야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교회에 가면 초코파이를 줬다. 용돈이라는 개념도 없고 백원짜리 동전 하나 구경 못하는 난 1주일 내내 주일을 기다렸다. 교회에 가면 먹을 수 있는 초코파이가 있었으니까. 교회에서 뭘 배웠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그냥 친구들과 뛰어놀고 선생님과 놀았던 기억 뿐이다. 초등부 선생님이라고 해야 대학생 정도나 20대 중후반이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무척이나 챙겨줬다. 가끔은 떡볶이도 사줬고 과자도 사줬다. 그래서 난 교회가 좋았다. 평소엔 군것질 하나 할 수 없는 내게 초코파이를 줬고, 예쁜 대학생 누나가 친절하게 대해줬으니까. 헌금 한 번 내지 않았어도 어느 누구도 헌금을 내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때 당시 초등학생들은 보통 100원을 헌금했다.)
동목교회엔 얼마나 다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뭐, 난 치매니까. 아마도 1년 정도나 2년 정도 나닌 것 같은데, 교회가 이사를 가면서 안 다니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가끔은 친구가 전도를 해서 친구 따라 교회에 한두 번은 가곤 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할머니의 잔소리가 교회에 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 집은 천주교 집안이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성당에 다녔고 세례도 받는 등 천주교에 열심이셨다. 그래서 교회에 가는 걸 싫어하셨다. 그런데 뭐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내가 가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갔을 것이다. 아마도 그냥 할머니가 가지 말라고 해서 한두 번만 가고 안 갔던 것 같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으니 한두 번만 가줬다. 내가 교회에 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헌금 때문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 백원짜리 동전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지지리 간난한 집 꼬마가 헌금을 낼 돈이 있을리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안 내기도 민망해서 안 갔다.
그러던 어느날 옆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알고 보니 교회 전도사님이셨다. 그것도 동네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 전도사님. 난 전도사님이 뭐냐고 물었다.
'목사님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목사님 바로 아래지.'
'와~~ 높은 사람이네요.'
그 부부는 아들만 둘이었는데 큰아들이 나보다 세 살인가 어렸다. 내가 살던 할머니 집은 수돗가도 있고 장독대도 있는 구식 집이었는데, 옆집은 최신식 연립주택(빌라?)였다. 와~~~ 집이 엄청 좋았다.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깨끗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어서 좋았다. 옆집 아주머니는 나와 동생을 전도하려고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집에 놀러오라고 해서 갔더니 집이 장난감 천지였다. 방은 2개였는데, 작은 방은 애들 방이었고 온통 장난감이었다. 그래서 난 거의 매일 이 집에 놀러갔다. 옆집 아주머니는 내가 놀러 오는 걸 좋아하셨는데, 내가 두 아들이랑 워낙에 잘 놀아줘서 좋아하셨다. 그 아주머니는 집에서 일(재봉틀로 늘 뭔가를 만드셨다.)을 했기에 애들이랑 놀아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땐 왜 엄마가 집에서 일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야 전도사 월급이 최저임금도 안 될 정도로 박봉이라는 걸 알았다.
옆집 아주머니는 우리 할아버지를 전도하는 데 성공했고, 할아버지는 매일 교회에 가셨다. 새벽기도에도 매일 가고 주일엔 늘 교회에 가셨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했기에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교회 가지 말라고는 안 하셨던 것 같다. 그 바람에 나와 동생도 그 교회에 다니게 됐다. 교회는 처음 다녔던 동목교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교회 마당이 무슨 운동장 만했고 어른 예배당이랑 애들 예배당도 따로였으며, 예배당이 몇 갠지 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많았다. 바로 옆집 아저씨가 전도사인 교회이고 좋은 교회. 하지만 난 이교회에 매주 가진 않았다. 위에서 말했듯, 헌금 못 내는 게 민망해서 잘 가지 않았다.
내가 이 교회에 다닌 건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새엄마가 있던 시절. 새엄마가 있었어도 뭐 방치였지만. 내가 이 교회에 가기 싫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학교에서 같은반인 남학생과 교회에서도 같은 반이어서 가기 싫었다. 걘 공부도 잘해서 부반장이었고 늘 좋은 옷을 입고 다녔으며 헌금도 꼬박 했다. 머리가 좋아 성경퀴즈도 잘 맞췄고 부모님도 교회에 오래 다닌 것으로 보였다. 그에 비해 나는 완전히 반대였다. 학교에선 꼴지였고, 부모님은 교회에 다니지 않았으며, 옷은 늘 얻어 입었고, 헌금도 내지 못했다. 교회에 잘 다니지 않아 문제를 내도 못 맞췄다. 담당 선생님은 20대의 여자였는데, 그녀는 내가 교회에 잘 나오지 않자 나를 많이 챙기려고 애쓰셨다. 그런데도 잘 가지 않아 너무 미안하다.
5학년 즈음이었나,,, 옆집 아들과 싸웠다. 뭐 세 살이나 차이는데 싸울 것도 없지만, 암튼 걔가 싫어졌다. 그래서 옆집에 놀러가지 않게 됐고 교회에도 안 가게 됐다. 장난감을 못 가지고 논다는 게 아쉬웠지만 음튼 걔가 싫어졌다. 왜 싫어졌나고? 애들이 그렇지 뭐. 동네 애들끼리 편먹고 놀다가 감정이 상했다고나 할까. 나도 참 성질 더럽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6학년 즈음이었지 싶다. 친구들과 한참 놀고 있는데 예쁜 누나들이 몰려와서는 재밌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동네 애들이 우르르 몰려왔고 우린 잼나는 인형글을 봤다. 그 누나들은 교회에서 전도 나온 분들이었고 동네 친구들은 그 누나들을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됐다. 거리가 좀 멀었고 작은 교회였지만 교인은 엄청 많은 교회였다. 열정이 대단한 교회.
우린 학교가 끝나면 매일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면 언제나 예쁜 누나들이 있었고 우린 누나들과 함께 인형극 연습을 하며 놀았다. 그리고 누나들은 매일 간식을 사줬다. 과자 하나 얻어 먹으려고 교회에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실이었다. 인형극 연습은 점점 재미가 없어졌지만 간식은 맛있었다. 그래서 양심에 찔렸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면서 간식 얻어 먹으려고 교회에 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건 예수님께도 실례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교회에 가지 않았다. 학교 끝나면 매일 갔던 교회, 매일 맛나는 간식을 얻어먹었던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러자 예쁜 누나가 집으로 찾아왔다. 왜 오지 않았냐고. 난 속직하게 말했다. '헌금도 못 내는데 매일 간식 먹는 게 미안해서요.' 누나는 헌금은 안 내도 되니 꼭 오라고 했지만 난 가지 않았다.
소설입니다. 진짜루!!!
ukk님이 naha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ukk님의 세 팀의 움직임 (@team1p , @union.sct , @naha.sct)
잘읽었습니다.
나하님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당. 역시 책을 쓰신 분이라 전개가 흥미롭게 술술 읽힙니다. 근데 왜 소설인걸 강조하시는거죠? 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소설 아니라고 생각하실까봐요. ^^
소설이 아니라 경험담 아닙니까? ㅎㅎ 그런 줄 알고 읽어내려왔는데 소설이군요 ㅎㅎㅎ
중간중간 오타가 보입니다. 교정 보실 거쥬?
근데 왜 이리 논픽션 같을까? ㅎㅎ
누가 뭐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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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입니다. 진짜루!!!
너무 강조를 하니 진짜루 나하님 이야기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