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하게 결론 내어지는 정답, 즉 (글에서 말한) '사이다'가 있길 바라는 것은 복잡한 것을 가지고 그의 맥락을 짚고 다른 것에 대해 이해하고 애매모호함에 대한 불편함이 기조에 깔려 있으라 생각됩니다. 이는 교육현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정답이 있는 문제 상황만이 주어지고 경쟁이 만연하여서, 신속정확하게 정답을 추리어 오답을 말하는 이를 비웃거나 놀리는 모습이 바로 그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교육되고 어른이 되어 세상만사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판단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린 문제를 통해 정답이 없고 이로써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 있을 뿐이며 '왜?' 그런지에 대해 서로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 알게 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설득당하는 것을 패배가 아닌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겠죠.
사이다가 만연하면 복잡한 고리가 풀어지지 않고 수면 아래에 누적될 뿐이다.
한국 사회의 담론법은 언젠가 사이다에 빠져 죽을 지도 모른다.
사이다에 빠져 죽지 않도록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정답이 아닌 각자의 답을 찾고 그 이유를 논하는 과정의 소중함을 알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사로의 업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 @fielddog님의 글을 읽으며 일종의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저 역시 사이다를 찾는 한 사람으로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슈의 본질은 대체로 고구마다. 목막힘을 참고 천천히 씹고 삼켜야 한다.
고구마에 대한 곱씹음과 불편하지만 그 든든함이 필요함을 깨달으며 '빨리 빨리'가 아닌 '천천히'의 필요를 느낍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를 비토하면 될지 빠른 결론을 내리려는 습관에는 분명히 우리사회 교육과 경쟁의 질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사읻는 저도 어쩔 수 없이 좋아합니다만... ㅎㅎ 그래도 논의란 타협의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