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불청객 - 01

in #kr7 years ago (edited)


불청객 표지.jpg

- 인사말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에 꽂혀서 그것을 꼭 이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때가.
느닷없이 시작한 방 청소가 그렇고 갑자기 짜장면이 땡겨서
급하게 중국집에 배달을 시킨다거나 뭐 그런 경우요.

제 경우에는 회가 먹고 싶었습니다.

주말에 집에서 쉬는데 갑자기 회가 먹고 싶어서 밖으로 나갔다가
어둑어둑한 시장 길에 슬슬 가게를 정리하는 생선가게
(회도 떠주는 곳이었습니다)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길지 않은 소설이니 두 편에 나눠서 올리려고 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상 및 피드백은 어떤 의견이든 환영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 본문


갑자기 회가 먹고 싶었다.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충동은 이유 없이 찾아오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충동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무례했다. 결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는 불청객. 지금의 내 충동이 그랬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경영악화. 내 이름이 선명히 찍혀있는 퇴직소득원천징수 영수증 서류를 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이제 20대 후반의 실직자 여성이었다. 밀린 월급 없음. 퇴직금 받음. 실업급여 받음. 하지만 재취업 방법이 보이질 않음. 젠장.

벌써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고 퇴사 초기의 짜릿한 해방감은 온데간데 없이 하루하루가 무기력함의 연속이었다. 퇴직금은 이미 한 달 가량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대가로 모두 써버린 지 오래. 재취업이 이토록 힘들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함부로 돈을 쓰는 게 아니었는데.

이미 수백 번도 더 후회했지만 그런다고 멍청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사라지진 않았다. 실업급여도 끊겼고 식비마저 줄이기 시작한지 한 달이 넘었다. 이태원이나 홍대, 가로수길 같은 번화가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나오는 그럴싸한 음식,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먹기 전에 연신 사진을 찍으며 인스타나 페북에 올릴만한 그런 비싼 음식을 먹은 지도 오래다. 집 근처 반찬가게에서 3개에 9900원짜리 세트에 햇반이 나의 주식이었다.

커피도 즐겨마시던 스타벅스의 달콤한 돌체 라떼나 더치커피 전문 카페인 발아정신에서 내린 은은한 초콜릿 맛이 느껴지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까지 모두 끊었다. 아직 돈은 조금 남아있었지만 난 그런 사치품을 즐길 여유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회를 먹고 싶은 충동이란 이름의 손님은 최악의 불청객이었다. 소심한 성격의 가게 주인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늘어놓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불청객. 이런 경우에 똑똑하고 센스있는 주인이라면 적당히 타이르거나 오히려 따끔하게 한 마디 하면서 처리하겠지만 난 그러기엔 너무 오랫동안 실직자였다.

낮아진 자존감 때문일까, 못이기는 척 말도 안 되는 불청객의 요구에 순응한다. 뭐, 회 한 접시 먹는다고 돈이 바닥나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기분전환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불청객이 이겼다.

어느덧 쌀쌀해진 가을날의 저녁 날씨에 대비해서 외투를 꺼내 입었다. 밖으로 나와 집 근처를 다니며 봤던 가까운 횟집을 갔지만 일요일은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맞이했다. 왜 하필 오늘인 거냐고. 지랄 맞은 불청객 같으니. 할 수 없이 몸을 돌려 다른 가게를 찾았다.


지하철 역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위치한 치킨집 맞은 편에 있었던 작은 횟집. 안에 들어가서 식사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분명 포장 가능이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났다. 아무리 회가 먹고 싶어도 혼자 가게 안에 들어가 먹을 자신은 없었다. 반드시 포장이어야 했다.

한 8분가량 걸었을까. 도착한 횟집은 역시나 문을 닫은 상태였다. 쌀쌀한 가을 밤 바람이 어느덧 외투 안을 파고들어 내 살결 속의 온기를 파헤쳐내기 시작했다. 그냥 치킨이나 사갈까? 가격도 회보다 훨씬 저렴하고 바로 맞은편 가게에 있다고 똑똑한 이성이 조언했다.

그러나 불청객은 끄떡없었다. 그는 다른 음식은 필요 없으니 당장 싱싱한 회를 가져오라고 고함쳤다. 쫄깃한 식감의 광어회에 감칠 맛나는 간장 와사비 소스를 찍어 대령하라고 횡포를 부렸다. 별 수 없지. 멍청한 가게 주인은 다른 횟집을 찾아 나선다.


외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봉천동 횟집을 검색했다. 더 이상 아는 횟집이 없었기에 새로운 정보가 필요했다. 검색 버튼을 누르자 수천 개의 횟집 정보가 출력되었다. 츄리닝에 슬리퍼신고 가기엔 너무 먼 곳을 제외하자 두 곳이 남았다.

먼저 가까운 ‘싱싱 목포 활어집’ 부터 찾아갔다. 걸어가는 도중 마주친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잘 차려입은 커플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댔다.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안고 있었다.

막연한 자괴감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에 혼자 대로변까지 나와서 회를 사려는 여자라니! 이 얼마나 한심한가. 예전 같았으면 친구들과 함께 대형 횟집에 가서 끝없이 나오는 스끼다시 요리를 하나씩 맛보고 정작 회는 배불러서 몇 점 먹지도 않고 사진만 연신 찍으며 남겼을 텐데. 지금은 이런 초라함이라니.


그냥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 맥주나 한 캔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불청객의 요구는 한결 같았다. 닥치고 횟집을 찾아서 회를 사! 이 멍청하고 한심한 년 같으니! 멍청하고 한심한 가게 주인은 찍소리 못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마침내 도착한 ‘싱싱 목포 활어집’ 은 포장 가능이란 문구가 붙어있지 않았다. 가게 문과 창문, 내부 어느 곳을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포장이 가능하면 문구를 붙였을 텐데!

가게 안을 바라보자 대부분 2명에서 많게는 6명까지 함께 온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어마어마한 수의 스끼다시와 회, 매운탕을 먹고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들어가서 혹시 포장 되냐고 물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저렇게 손님이 많고 스끼다시도 나오는데 포장이 될리가 없지. 다시 발걸음을 돌려 마지막 횟집을 찾아갔다.

마지막 횟집은 시장에 위치한 ‘광명 수산’이라는 생선 가게였다. 이전에 한번 급하게 지하철역으로 뛰어가다 콧등을 후려치는 수준의 비린내 때문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이후로 최대한 피해 다녔던 곳이었다.


영 내키지 않았다. 보통 시장바닥의 생선가게는 억세고 불친절한 중년의 남자들이 팔고 있어 꺼림직했다. 괜히 바가지를 씌울 것 같고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상태 안 좋은 생선을 인심 쓰는 척 팔아 치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저씨들 특유의 직설적이고 끈적한 시선이 싫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불안해하는 가게주인의 촉을 무시하고 시장 쪽 생선가게로 걸어갔다. 어느덧 하늘은 완전한 어둠의 막을 올려 본격적인 밤의 연극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멀리 시장 길에 광명 수산이라는 간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간판 안에 형광등을 넣어 밤에도 잘 보이도록 만든 간판이었는데 형광등 몇 개가 수명이 다한 탓인지 ‘명’ 자만 보이지 않아 ‘광 수산’ 처럼 보였다. 간판 아래에는 그보다 더욱 큰 글씨로 현수막에 ‘회 떠드립니다.’ ‘동해바다에서 직접 가져오는 싱싱한 회!’ 라고 적혀있었는데 가로등의 주홍빛 조명덕분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진하게 풍겼다.


하얀색 스티로품 위에 변기 소독제를 떠올리는 푸른색의 비닐을 씌워놓고 그 위에 생선을 잔뜩 올려놓고 팔고 있었는데 이미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한참 지나서인지 손님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좀더 가까이 가자 생선 비린내와 함께 실력 없는 목수가 만든 게 분명한 나무 도마와 그 위에 꽂혀있는 거대한 식칼이 보였다. 도마라기 보다 그냥 나무 토막 같았다. 저 나무 토막 위에서 얼마나 많은 생선이 잘려나갔을까? 시커먼 얼룩 같은 것이 잔뜩 묻어있어 더욱 역겹고 더러워 보였다.

옆에는 거대한 크기의 남자가 보였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최소 190에 100키로는 나가 보였다. 방수포 재질로 만든 흰 앞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군데군데 빨간 얼룩이 묻어있었다. 왼 손에는 새빨간 고무장갑을, 오른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역시 얼룩이 가득하긴 마찬가지였다. 일말의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얼굴은 막노동을 일삼는 공사장 인부처럼 진한 갈색이었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새 난 ‘광 수산’을 지나고 있었다. 분명 시장에서 몇 년에서 길게는 십 수년간 장사해온 사람일 텐데 내 여성의 촉은 위험이라는 경보기를 쩌렁쩌렁 울려댔다. 그대로 걸어서 집으로 가려 했지만 마지막까지 내 불청객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다시 한번 ‘광 수산’ 간판과 ‘회 떠드립니다’ 현수막을 바라보자 현수막에 ‘봉천동까지 배달 가능’ 이라고 매직으로 쓴 작은 글씨가 보였다. 가게 꼴이 저 모양인데 장사가 잘 될 턱이 없지. 배달이라도 하면서 겨우 수입을 유지하는 걸까?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어 회를 배달시키고, 돈은 미리 우편함에 넣어두던지 사슬 안전고리를 걸어두고 돈만 건네준 다음에 배달원이 가고 나면 회를 가져오면 되니까.

그보다 꼭 저 남자가 배달을 오리란 법도 없었다. 당장 가게를 봐야 하니 다른 배달업무를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뭐가 됐든 지금 저 가게로 가서 직접 얘기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검색엔진 웹페이지를 켜서 봉천동 광명수산을 검색하자 곧바로 지도상 위치와 전화번호가 출력됐다. 좋았어. 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걸어가면서 회를 주문했다. 와사비와 초장도 같이 듬뿍. 어느새 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깜깜한 상태였다.


주문을 마친 뒤 집에 돌아온 나는 한참 돌아다닌 덕분에 차가워진 몸을 덥히기 위해 샤워를 했다. 언제부턴가 샤워는 아침 일과의 시작이 아니라 하루의 마무리 단계로 바뀌어있었다. 미리 사둔 맥주도 꺼내놓고 매운탕을 대신할 매콤한 국물의 컵라면도 준비했다.

한창 주전자 물이 끓을 무렵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초인종 액정 화면을 보자 안정되었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며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조금 전 생선가게에서 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거대한 몸집 덕분에 코까지만 보였지만 분명 그 남자였다.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며 간절히 빌었다. 제발 목소리는 떨리지 않길. 배달원 얼굴이 무서워서 목소리까지 벌벌 떠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망할 자식. 가게는 어쩌고 직접 배달을 온 거야!


“여보세요”

다행이 떨림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네 105호 회 배달 시켰죠?”

낮고 굵직한 목소리였다. 베이스 기타나 콘서트장에서 쓰는 거대한 스피커에서 울리는 저음 같았다. 심리적인 떨림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의 몸을 떨리게 만드는 거대한 저음. 남자의 거대한 몸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네 맞아요. 저기 공용문 열어드릴 테니까 회는 105호 문 앞에 두고 가시고 돈은 제가 문 사이로 해서 드릴게요. 지금 집이 난장판이어서..”

괜한 얘길 한 걸까? 집이 더럽다고 문을 못 열겠다니! 누가 봐도 난 혼자 있어요 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제발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알겠다고 했으면..


“그러세요”

다행이 남자는 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고 공용문을 열어주자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유지한 채 걸어 들어왔다. 사슬 안전고리만 남긴 채 문 잠금잠치를 열고 문을 조금만 열자 복도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남자 배달원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맞춰 내 심장 박동도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뚜벅, 두근, 뚜벅, 두근 뚜벅 두근 두근…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문 앞에서 끊기고 회 접시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내 차례였다. 미리 꺼내둔 지폐뭉치를 문 사이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내 눈보다 한참 높은 곳에 남자의 오른쪽 눈동자가 보였다. 그의 눈은 웃고 있었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런데요 껄껄껄. 내가 인상이 좀 험악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남자가 돈을 받아 들고는 거대한 트럭처럼 웃으며 얘기했다. 마치 시동 거는 소리 같았다. 말도 안 되는 비유에 나도 모르게 조금 긴장이 풀렸다.


“주문해줘서 고맙고요 이건 처음 주문하셔서 서비스로 주는 겁니다.”

남자의 손에는 타코 와사비가 들려있었다. 일회용 회 접시와 달리 고급진 유리 그릇에 담겨있었다. 조심스레 회 접시 옆에 두고는 “이건 접시에 드리는 거라서 이따 드시고 밖에 꼭 좀 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한 뒤 왔던 모습 그대로 떠났다. 복도 너머로 공용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서비스와 의외의 친절한 모습에 잔뜩 긴장했던 몸에 평화가 찾아왔다.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뭐라고, 회 배달시키는 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했을까 바보같이. 멀쩡한 사람을 의심하고 무서워한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뭐 어때? 맛있게 먹어주고 다음에 또 주문하면 해결될 문제 아닌가? 개의치 않고 문을 열어 회가 담긴 쟁반과 타코 와사비 접시를 가져온 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친 후여서 그런지 온 몸의 혈관으로 퍼져나가는 차가운 알코올의 기운이 작은 한 방울까지 뚜렷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회는 생각보다 훨씬 싱싱하고 맛이 좋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게 주인도 불청객도 모두 기뻐하며 만찬을 즐기는 중이었다. 서비스로 받은 타코 와사비도 포장을 벗기고 맛을 봤다. 톡 쏘는 와사비 소스가 입 안을 간지럽히며 이내 쫄깃한 낙지의 식감이 입맛을 마구 돋궜다.

허겁지겁 먹다 어느새 바닥을 보인 타코 와사비 그릇에 시선이 갔다. 유럽풍의 화려한 색감이 살아있는 레몬이 그려진 접시였다. 접시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으나 결코 그 을씨년스러운 생선가게에서 나올법한 물건이 아니었다.

험악한 인상과 달리 친절한 주인 아저씨, 외관에 비해 맛있는 회, 모두 수긍할만한 범위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 예쁘장한 레몬문양 그릇만큼은 허용범위 밖으로 소란스럽게 굴러가고 있었다. 데굴데굴. 회 접시는 일회용으로 줬으면서 왜 타코 와사비 그릇만 일회용이 아닐까?


점점 사고 회로가 불길한 가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안전사슬이 위태롭게 걸려있는 문 틈 사이로 보이던 남자 배달원의 눈. 그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잔뜩 긴장한 한 여성의 모습? 여자 신발뿐인 신발장? 달리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 이 여자는 혼자 살고 있고 잔뜩 겁에 질려있으니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그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초인종 액정 화면에 다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물론, 친절하게 타코 와사비를 서비스로 준 그 남자였다.


“맛있게 드셨죠? 그릇 찾으러 왔습니다.”

문틈 사이로 봤을 때 다른 남자가 있었으면 타코 와사비가 담긴 레몬 문양 그릇은 주지 않았겠지. 무심하게 회만 배달하고 갔을 텐데.


“죄송해요. 아직 다 못 먹어서 그런데 조금 이따 드리면 안될까요?”

아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불길하게도 이 남자 배달원은 굉장히 예민해 보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주세요. 남은 건 다른 그릇에 옮겨두면 되잖아요?”

절대 이 사람을 안으로 들이면 안 된다. 문을 열어주면 안 된다고 온 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며 경고했다. 그러나 더 이상 댈 수 있는 핑계거리가 없었다. 멍청하고 수동적인 가게주인은 불청객의 말을 들어줬던 것처럼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황급히 식탁으로 돌아와 타코 와사비를 회 접시에 옮기고 휴지로 레몬 문양 그릇을 닦아냈다. 이 와중에도 접시를 닦고 있다니. 한심하다. 남자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멈추곤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노크 소리가 마치 심장을 강타하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문 앞으로 다가가 안전장치를 열고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자신의 머리보다 한참 위에 위치한 남자의 눈동자가 보였다. 몸이 덜덜 떨렸다. 남자의 눈동자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광기가 느껴졌다. 레몬 문양 그릇을 문틈 사이로 넣어 넘겨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두께가 있어서 잘 되지 않았다. 계속 달그락거리길 수 초. 결국 남자가 입을 열었다.


“거 안 나오는 거 같은데 문 좀 열어봐요. 나 바빠요.”

“아..그게.. 그러니까…”

“지금 가게 보는 사람도 없이 나와서 얼른 가봐야 한다니까요 거참. 빨리 열어봐요. 나 가야 돼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연신 그릇을 달그락거리며 문틈으로 집어넣으려 노력하던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남자 배달원의 얼굴을 봤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저기 무언가가 위험한 게 있다는, 내 본능 속에 각인된 생존본능의 경고였다.

광명수산의 주인은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움직였다. 솥뚜껑 같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고 느낀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채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사슬 안전고리가 철그럭, 하고 뜯겨나갔다. 내가 떨어뜨린 레몬 문양 그릇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무수한 파편으로 부숴졌다. 신발장에 커다란 발이 들어오고, 문이 닫히고, 잠겼다.


방 안에 불이 꺼진 것처럼 어둠이 다가오고 나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만이 가득 찼다. 기억나는 거라곤 몸이 엄청나게 무거운 것에 깔려있다는 것과 지독한 생선 비린내...

그리고 옆집 창문이 닫히는 소리뿐이었다.




-후기


회... 회가 먹고 싶어지네요. 츄릅.
여자 주인공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참! 아직 스팀파워가 낮아 대역폭 문제로 골치를 썩고있던 저에게
천사같은 @outis410 님이 스팀파워를 대여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는데도 댓글과 보팅으로 응원해주시는
스티머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놀라움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더욱 열심히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다음 편 보기


불청객 -02편
https://steemit.com/kr/@sts16/yzdng-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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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재군요! 이번에도 응원합니다 ㅎㅎ 1편은 평온하게 넘어가나 했는데, 마지막에 조마조마 하면서 읽었네요 ㄷㄷ...

조마조마하셨다면 성공이네요! 응원 감사합니다ㅎㅎ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https://steemit.com/kr/@gudrn6677/3zzexa-and

오오 오치님! 짱짱맨 태그 덕분에 큰 도움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레포트도 나오는 줄은 몰랐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사무실에서 혼자 읽고 있었는데 중간쯤 온 줄 알았는데 끝나서 아쉽네요 ㅋㅋ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완결이자 다음편은 내일 올려드리겠습니다ㅋㅋ 기대해주세욧!

천사같다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라 깜짝 놀랐어요ㅎ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혼자 사는 여자라 감정이입을 안할 수가 없는 글이었어요. 결말이 어떻게 날지 불안하네요ㅜㅜ 잘 읽었습니다!

전 남자인지라 여성 주인공의 심리와 감정을 살릴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이입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천사같은 @outis410 님ㅎㅎㅎㅎ

오오....분장이 흥미진진한데요?! 이거 보팅하고 복사해서 프린트 할게요 ㅋㅋㅋㅋ진에가서 필사연습할때 쓰게요. 멋지심!

헛! 보팅에 프린트까지! 제가 쓴 글에 자부심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재밌습니다. 그거말고는 남길말이 없네요.

저에겐 최고의 칭찬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