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모를까마는 우리말에는 숫자를 세는 법이 두 가지 있다. 한자어로 세는 일, 이, 삼, 사가 있고 고유어로 세는 하나, 둘, 셋, 넷이 있다. 유창한 한국어 이용자들은 12시 12분을 보고 ‘열두 시 열두 분’이라거나 ‘십이 시 십이 분’ 따위로 읽지 않고 익숙하게 ‘열두 시 십이 분’으로 읽어낸다. 더 나아가 이를 이용해서 '하나도 모른다'는 말로 '일을 모른다'는 말장난을 만들만큼 여유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말장난이 말장난처럼 느껴지지 않기 시작한다. 점차 하나 둘 셋의 자리를 일 이 삼 사가 빼앗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나이를 스물네 살이 아니라 이십사 살이라고 말할 때, 여든 살 할머니가 아니라 팔십 살 할머니라고 말할 때, 내가 느끼는 어색함을 말하는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더라. 그러고보니 언제서부턴가 마흔도 쉰도 예순도 사라졌다.
사실 원칙을 따지자면 나이를 셀 때, 고유어는 고유어끼리 한자어는 한자어끼리 어울려, ‘스물네 살’이라고 하거나 ‘이십사 세’라고 함이 옳다. 아래 드라마를 보면 이를 확실하게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유어 숫자가 자리를 내준 곳이 이뿐이랴. 이제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등도 드라마나 뉴스가 아니면 사람들 입에서 듣기 어려워졌다. 심지어 ‘이틀’을 ‘2틀’로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다.
누군가는 효율을 따져서 고유어 숫자를 없애자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효율만을 따질 것이면 한국어 자체부터 없애서 세계 언어를 하나로 통일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언어는 그 자체로 역사와 생활이 담겨있는 문화이고 컨텐츠이다. 굳이 다양성을 죽여 없애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물론 언어란 살아있는 것이고 또 이 변화 역시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이미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을 내가 붙잡는다고 우두커니 서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도 이 언어의 게임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내심 아쉬워하며 지켜볼 따름이다. 그냥 말이 사라지기 전에 잔뜩 써보기라도 해야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서른셋 서른넷 서른다섯 서른여섯 서른일곱 서른여덟 서른아홉 마흔
마흔하나 마흔둘 마흔셋 마흔넷 마흔다섯 마흔여섯 마흔일곱 마흔여덟 마흔아홉 쉰
쉰하나 쉰둘 쉰셋 쉰넷 쉰다섯 쉰여섯 쉰일곱 쉰여덟 쉰아홉 예순
예순하나 예순둘 예순셋 예순넷 예순다섯 예순여섯 예순일곱 예순여덟 예순아홉 일흔
일흔하나 일흔둘 일흔셋 일흔넷 일흔다섯 일흔여섯 일흔일곱 일흔여덟 일흔아홉 여든
여든하나 여든둘 여든셋 여든넷 여든다섯 여든여섯 여든일곱 여든여덟 여든아홉 아흔
아흔하나 아흔둘 아흔셋 아흔넷 아흔다섯 아흔여섯 아흔일곱 아흔여덟 아흔아홉.
아흔아홉 칸 집에서는 언제 살아보나...
―삼월 열아흐렛날에서 스무날로 넘어갈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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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요 모르는 사이....
시나브로...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