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자신을 향한 진보진영 유권자들의 분노에 당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황할 만 하다. 그의 입장은 아마도 대중의 친구에서 갑자기 적이 되어버린 연예인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중이 연예인을 물어뜯을 때 어김없이 대중을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대체로 옳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시장의 논리를 덧붙여 생각하는 편이다.
예컨대 불륜을 통해 이혼과 재혼을 한 연예인이 있다고 하자. 대중은 그를 빠른 속도로 내버린다. 그는 TV 프로그램에서 퇴출되고 광고도 끊긴다. 이제 그는 억울하다. 그런데 그가 억울한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단 그는 대중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전처의 신뢰를 저버렸을 뿐이다. 간통은 이제 형사도 아니고 민사다. 법적으로도 사적인 일이다. 논리적으로 대중이 그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그런데 그의 성공과 몰락의 원리는 사실 같다.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몸값이 롤러코스터처럼 치솟고 혹은 곤두박질치는 업계의 논리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의미도 된다. 연예인이 한 편에 출연료 1억원짜리 광고를 찍을 때, 그의 노력과 재능이 연봉 1억짜리 전문직의 365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의 시장가치가 억대연봉자의 365배가 된 이유는 대중이 그를 사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미워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지지의 이유도 논리적일 의무는 없다. 애초에 호감과 비호감은 합리의 영역이 아니다. 연예인은 국가와 사회에 치열한 봉사를 한 대가로 사랑받는 데 성공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꼭 죄의 대가로 몰락하란 법도 없다.
다만 인간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연예인의 성공 즉 자신의 호감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잊을만 하면 올라오는 인성론이 좋은 예다. 이 게시물들은 유재석이 얼마나 성실한지, 박명수가 사실은 얼마나 착한지, 수지가 사회생활을 얼마나 잘하는지 설명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불륜, 도박, 마약으로 대중의 호감을 잃고 낭인이 되었다면 성공했을 때와 동일한 원리인 건조한 시장논리를 받아들일 일이다. 이것 자체는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대중이 비호감의 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의 설명을 믿는 순간 당사자는 사회악이 되어야만 하는 굴레에 빠진다. 현상에 윤리적 가치판단을 해 버리면 표적이 된 연예인의 불행은 사회정의 구현이 된다. 이건 폭력이 맞다. 그래서 몰락한 연예인의 억울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이재명이 빠른 시간에 대형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유도 진보진영 유권자들의 감정에 있다. 그는 인성론의 대표적인 수혜자였다. 이재명은 선량하고 정의로운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아군에게 좋은 감정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 '사이다'로 떴다.
나는 이재명의 사이다 숭배도 탐탁치 않았지만 지금 SNS에서 난리법썩을 이루는 이재명 혐오를 보는 기분도 별로 좋지 않다. 두 감정의 원리는 같다. 그 원리란 아군의 상징이자 정점인 문재인 대통령의 우군인지 아닌지, 그리하여 선인인지 악인인지를 나누는 인성론이다. 연예인의 성공과 몰락과 비슷하다. 어차피 정치인은 권력을 추구하는 연예인이다.
(이재명에 대한 의혹에 대해 굳이 말해야 한다면,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사실일 거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글에서는 관심 없는 이야기다.)
적에 대한 사이다맛 응징으로 뜬 정치인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응징 심리로 몰락할 수도 있다. 이것이 정치 시장의 논리이며, 거래의 질이 안 좋긴 하지만 해당 세계관 내에서는 공정거래이기도 하다. 또한 이재명이 성공한 배경-유권자들의 감정-이 그만큼 허술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연예인에게는 호감도가 있지만, 정치인은 거기에 더해 정책이 있고 정책의 기저에는 사상이 있다. 이재명이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고 대형정치인으로 장수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견고한 철학과 그릇이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시간은 그의 가치를 결국 증명할 것이다.
정치는 연예계와 달라서 유권자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지지한다. 한 번 지지하고 나면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랑하기로 결심할 것이다.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제패한 유방이 대표적인 예다. 당대의 중국인은 인간적으로는 항우를 좋아했다(동시에 두려워했다.). 유방이 인격 저렴한 술주정뱅이 난봉꾼임은 천하가 다 알고 있었지만 그는 민중과 거래를 틀 줄 알았다. 그의 성공이 민생에 유리했기에 중국 민중은 유방을 지지했다. 그러고 나자 유방을 사랑하기 위해 영웅탄생신화를 여럿 만들어냈다.
이재명은 운이 좋다. 그는 대통령이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는 지금 여당의 후보다.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온라인 특히 SNS의 여론은 오프라인보다 빠르다. 6월 13일은 온라인 여론이 오프라인에서도 보편화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재명의 진짜 숙제는 경기도지사가 되고 나서부터다. 그는 자신의 정치가 얼마나 단단하고 넓은 토대를 지녔는지 증명해야 한다. 유방에게는 정책에 장자방, 사상에 역이기가 있었다. 이재명의 장자방과 역이기는 무엇인가? 있기는 한가? 있다면 보여주고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지사 당선을 통해 정치인 이재명은 성공할 수도 몰락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되든 그 과정은 한국 대중정치의 명암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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