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시장경제 덕분에 고속 성장을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시장의 자율 덕분에 성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경제학적 직관에도 부합하고, 21세기를 볼 때 역사적으로도 납득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논제는 분명 반박의 여지가 많습니다.
가난과 낙후된 환경 때문에 허덕이던 시대에, "자석조"로 불리는 자동차 석유 조선업과 같은 중공업을 선택한 것은 시장의 결정이 아닙니다. 당시 별 볼 일 없던 좁은 땅에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겠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실현가능성이 낮아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관료들의 혜안, 그리고 미국의 원조 및 방향 제시 덕에 중공업 진흥이 결정된 것입니다. 차관 문제도 민간의 힘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었겠죠. 그리고 70년대 80년대 6~7% 경제성장의 중심에는 정부주도의 중화학공업이 있었습니다.
한편
소련은 1900년대 초중반부터 계획경제를 도입했던 나라입니다. 물론 계획경제의 문제점으로 인해 시장경제에 비해 경제력이 밀리게 되었고, 그 역부족으로 결국 붕괴/소멸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계획경제만으로 50년대 60년대 "천조국"에 견줄 힘을 갖출 수 있었을까요? 실제로 30년대 40년대 소련의 계획경제는 연평균 5%가 넘는 압축성장에 성공했습니다. 50년대에는 서독과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의 성장률을 능가한 기록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념적 문제로 잘 가르치지 않는 내용이겠지요.
과학기술도 못지 않았습니다. 다만 군용기술에 집착한 폐해가 컸지만요. (계획경제의 대표적문제)
위 사례들로 미루어보아 핵심은 이겁니다.
"계획경제는 어린아이에게 먹이는 이유식!"
즉 계획경제는 완전히 낙후된 경제, 미개발경제, 빈국에게는 압축성장, 급속성장, 고도성장을 일으키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이유식먹일 나이의 아이에게는 이유식만 먹여도 몇 센티씩 큽니다.
문제는 다 큰 아이에게 예전 먹이던 이유식을 그 양대로 먹인다면? 영양실조에 안걸릴수가 없지요.
다 큰 초등학생 아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질을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나라를 비롯한 OECD 국가라면요? 성인에 알맞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계획경제는 다 큰 아이와 성인에게는 맞지 않는 식단입니다.
중국도 곧 다 큰 아이가 될 때쯤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난관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때는 시장의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아이가 커가면서 사회의 각 부분이 너무 세분화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자기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잘 알지 못하고, 분업도 더욱 고도화됩니다.
각국의 정부 관료들이 반도체기술 지식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반도체 가격을 책정할 수가 없습니다.
각국의 정부 관료들이 건축공학 지식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건축서비스 가격을 책정할 수가 없습니다.
각국의 정부 관료들이 블록체인/코인 지식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코인 가격과 세금을 책정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이유식을 먹일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소련이나 중공식 계획 경제와 한국 군부가 했던 계획 경제의 가장 큰 결정적 차이점은 '시장'을 활용했느냐 여부인 거 같습니다.
자원 분배에 정치 권력을 활용하긴 했지만 그 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와 해외 시장을 개척해 경쟁에서 살아 남은, 재벌로 대표되는 '기업가'가 한국에는 존재했고 군부도 이들을 적극 활용한 것이 결정적 분기점이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