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뉴스 플랫폼 시빌(Civil)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언론 모델을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출범했다. 하지만 시빌이 고용한 기자와 언론인들은 시빌의 일원이 되면 받을 수 있다던 금전적 보상을 사실상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를 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데 있다.
블록체인 미디어 플랫폼 시빌의 전·현직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시빌은 미국 내 14개 언론사 소속 기자들에게 시빌 플랫폼을 선전하며 시빌에 기사를 송고하거나 시빌 소속 기자가 되어 기사를 쓰면 보상 일부를 자체 암호화폐 시빌(CVL) 토큰으로 받게 될 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빌 측은 시빌 토큰의 가치가 세금 신고서에 적힌 가격이나 발매 전 예상 가격보다 적어도 몇 배는 더 뛸 거라고 전했다.
하지만 시빌의 토큰 판매는 모두 알다시피 수요 부진으로 판매 액수가 목표한 금액에 크게 미치지 못하며 실패로 막을 내렸다. 토큰을 사겠다고 약정하고 미리 돈을 보냈던 이들은 모두 환급을 받았지만, 시빌 프로젝트에 합류한 기자들은 기사를 쓰고 시빌에 올리는 대가로 받기로 한 토큰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아무런 기약이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빌 플랫폼 자체도 아직 다 개발되지 않았다. 훌륭한 언론, 기자와 그런 기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쓴 좋은 기사라면 기꺼이 돈을 내고 읽을 의향이 있는 독자들을 이어주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아직 미완의 상태다. 기자들만 이미 수십 명을 고용한 시빌 편집국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다지만, 시빌 플랫폼에 들어오는 독자들에게 가장 독특하고도 가치 있는 특징이 될 거라고 홍보한 시빌 토큰 기반 보상 체계는 쏙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시빌에서 아예 발을 빼는 기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시빌 회원사인 슬러지(Sludge) 소속 기자로 일하다가 지난달 8일 일을 그만둔 제이 카사노 기자도 그중 한 명이다. 카사노 기자는 다섯 달 동안 일한 대가로 받아야 할 보상의 70%가 시빌 토큰인데, 토큰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더 무료 봉사하듯 일할 수는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시빌은 미래 언론 지형을 책임지는 플랫폼이 되겠다며 온갖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지만, 실상은 그 언론을 구성하고 책임질 기자들을 빚더미로 몰아넣고 있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시빌이 급여와 보상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탓에) 나만 해도 집 월세를 내고 학자금을 갚느라 돈을 더 빌려야 했다.”
시빌의 CEO 매튜 아일스는 직원들의 주장에 반박했다.
“일단 시빌은 누구에게도 우리 토큰의 가치가 얼마로 뛸 거라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없다. 편집국 안에서 시빌 토큰의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논의할 때도 우리는 늘 신중하게 예상 가격을 도출했고, 그마저 늘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왔다.”
시빌의 토큰 판매 방식은 기존의 다른 ICO들과 조금 달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시빌 토큰을 사려는 수요를 억제해 잠재적으로 토큰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걸림돌이 된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누구나 쉽게 토큰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아일스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도 다른 주장을 폈다.
“시빌 토큰은 철저히 시빌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들만을 위한 토큰이다. 투기 자본과 투기 수요에 토큰 가격이 영향을 받아 휘둘리지 않도록 하다 보니 유동성과 가격 변동성에 일정 부분 제한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빌 네트워크에 참여해 토큰을 쓸 계획이 없는 이들, 투자 목적으로만 토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토큰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실제로 시빌 토큰을 사려면 꽤 엄격한 고객파악제도(KYC) 절차를 통과해 신원을 검증해야 했고, 거래소 스타트업인 에어스왑(AirSwaP)과 제휴를 맺고 시빌 토큰을 아무나 쉽게 살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카사노 기자를 비롯한 다른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은 아일스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장 시빌 토큰 가격이 얼마가 될 거라고 얘기했느냐에 관해서만 해도 양측의 말이 상당히 다르다.
내부적으로 가치 뻥튀기?
카사노 기자는 아예 시빌 측이 회원사로 가입한 제휴 언론사 소속 기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시빌 토큰 가격이 개당 $0.75 수준까지 오를 테니, 이를 토대로 잠재적인 급여나 금전적 보상을 계산하면 된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세금 신고용 문서를 보면 시빌 토큰의 평가 금액은 개당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일스는 이 주장에 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카사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빌 측은 기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내부적으로 프로젝트와 토큰의 가치를 계속 부풀렸다. 나중에는 ($0.75보다) 더 높은 가격까지 오를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아일스는 기자들과 계약서에 적힌 토큰 가격의 두 배 혹은 네 배까지 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여전히 시빌과 제휴을 맺은 회원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기자도 시빌 측은 직원들에게 토큰 가치가 오를 일만 남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말했다.
“토큰 가격이 오르면 모두 머지않아 부자가 될 거라고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
이름과 신원을 밝히지 않는 대가로 취재에 응한 이 기자는 토큰 판매가 무산되기 며칠 전에 시빌 측은 우려하는 기자들을 달래고자 암호화폐 업계의 큰손들이 아직 판매되지 않은 토큰을 대량 사들여 목표 금액을 달성할 수 있게 도울 거라는 말을 흘렸다고 말했다.
아일스는 토큰 가격과 관련해선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토큰 판매가 부진했을 때 암호화폐 업계의 자금력이 센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하기는 했다고 인정했다.
“토큰 판매가 목표 금액에 한참 못 미친 채로 몇 일간 계속되면서 마감 기한이 다가올수록 ‘큰손’이 토큰을 대거 구매하는 방법 외에는 목표를 달성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마감을 며칠 앞두고는 투자자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느라 그야말로 동분서주했다. 우리의 목표와 운영 방식을 최선을 다해 설명하기는 했지만, 토큰 가격이 어디까지 오르리라고 보장한 적은 절대로 없었다.”
토큰 판매가 끝내 무산되며, 시빌은 최소 목표 금액이었던 800만 달러를 투자자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했다. (물론 실제 모인 금액은 800만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 가운데는 인큐베이팅 과정에서부터 시빌을 키워냈고, 토큰 판매 초기인 9월에 이미 110만 달러어치 시빌 토큰을 사기로 약정한 콘센시스(ConsenSys)도 있었다. 콘센시스의 창업자 조 루빈은 시빌 토큰 판매를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아일스는 루빈과 콘센시스 측은 토큰 판매가 무산된 뒤 곧바로 투자했던 돈을 돌려받았다고 말했지만, 시빌 편집국의 기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보상으로 받을 예정이던 토큰을 언제쯤 받을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아일스는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창업자 CEO 몫으로) 시빌 토큰 500만 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토큰은 언제쯤?
약속한 토큰을 언제쯤 지급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기자들과 아일스의 주장이 엇갈린다. 카사노 기자와 익명의 기자는 토큰 지급 일정에 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일스는 “토큰 지급을 시행하는 목표 시점을 편집국 관계자들과 공유했고, 조만간 좀 더 자세한 일정을 공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기자들과 협의를 마치기 전까지 토큰 지급 일정을 공표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아일스는 또한, 시빌이 여전히 깃허브에 오픈소스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 발행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며, 여전히 매주 수십 명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ICO나 토큰 판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란은 대개 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는 토큰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판매한 행위가 증권법 위반이냐 아니냐에 관한 것이다. 직원들에게 자체 토큰으로 보상을 지급하기로 했다가 사정상 지급이 기약 없이 미뤄진 시빌의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법무법인 바이언 앤 스톰(Byrne & Storm, P.C.)의 변호사 프레스톤 바이언은 대중에게 토큰을 판매한 것과 직원에게 발행하는 토큰을 지급하기로 한 약속을 두고는 아마도 다른 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물건을 받거나 취득한 뒤에 그것의 가치가 오르더라도 법적으로 증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도 있다. 고용 계약을 맺었으면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하고, 그 과정은 정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바이언 변호사는 또한, 토큰을 둘러싼 법적 문제가 몇 가지 주요 사실이나 특정 환경에 좌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빌 토큰의 경우, 일단 공개적으로 토큰을 사려던 이들은 모두 돈을 돌려받았으므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증권법을 가지고 문제 삼을 걱정도, 구매자들이 시빌에 달리 보상을 요구할 것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증권법에는 미등록 증권 판매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금전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도록 권리를 폐기하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고용 계약을 맺은 상대방에게 토큰을 지급하는 건 증권 판매와는 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이 토큰을 정확히 어떻게 취득했는지, 토큰이 임금의 일부인지 혹은 어떤 성격의 보상인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