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nth in Glenellen
(1) │ by @chaelinjane
종일 비가 내린 하루였다. 오후 9시가 다 되어가자 비로소 해가 사라지고 새벽 같은 푸른 하늘이 풀어졌다. 말리부 밀크 한 잔을 마시고 난 뒤 나른해진 채로 무릎에는 랩탑을 올려놓고, 오른손으로는 고양이 레오의 털을 쓰다듬고 있다. 글을 쓰다가 다음 문장을 생각하는 동안 고양이의 뒤통수를 만지작 거리는 것이다. 처음 며칠간은 나를 경계하던 녀석이 이제는 촉촉한 콧방울과 뺨을 내 손에 비벼댄다. 게다가 우리는 (별 의미는 없는) 몇 마디 언어도 나눈다. 이곳에 왔을 때 함께 지내는 사람들한테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눈이 가렵고 빨게 지는 현상은 다행스럽게도 한 두 번 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심결에 눈만 비비지 않으면 된다. 고양이와 가까이 지내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11월, 뉴질랜드는 여름으로 향하고 있지만 해가 나지 않을 때에는 한국의 11월 추위가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도 나는 겨울 수면 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있다.
첫 만남
시월 십일 오후 다섯 시, 북섬에서 미리 이야기해두었던 고어의 농장에 도착했다. 오늘처럼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남극과 가까워진 데다가 햇볕이 들지 않아 기온이 상당히 떨어졌다. 2주간의 경험으로 텐트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라면 텐트에서 나갔다 들어오는 일 조차도 상당히 곤혹스럽다. 하고많던 날씨 좋은 날들 중에 하필 이런 날, 최악의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실내가 마련되었다. 알게 모르게 신이 이 여행에 함께 하고 있는 모양이다.
고어로 향하는 길에 우리가 머물게 될 농장이 어떨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릿속에 영화 <내 사랑(Maudie)>에 등장하는 모드와 에버렛의 나무집이 떠올랐다. 낡은 침대와 오래된 가구들, 그리고 삐걱대는 나무판자가 깔린 작고 추운 방. 결코 편하지는 않겠지만 조그맣고 반짝이는 순간들로 채워질 것 같은 공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집의 구조 속에서 새로운 습관을 장착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와이카카 밸리 로드 x번지... 설마 저 집일까?
눈 앞에 보이는 집은 육중한 규모로, 나의 소박한 상상을 쉽게 허물었다. 말끔한 저택이었다. 그래, 웹페이지에서 확인한 농장의 규모를 다시 생각하면 집 또한 그렇게 작을 리가 없다. 대문 앞 문패에는 ‘글렌 엘렌(GLENELLEN)’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집의 이름이었다.
[오늘 날씨가 무시무시하네요. 일 때문에 나와 있는 중인데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5시까지는 집에 없을 거예요. 남편 도날드 Donald(별명이 하위 Howie예요)가 조금 더 나중에 도착할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오세요. 대만에서 온 웬디 Wendy가 맞이해줄 거예요. 두 분의 집처럼 편히 계시면 됩니다. 나중에 봐요. ─ 브리짓] (Wed, 10 Oct, 11:34 AM)
아침에 봤던 문자를 다시 한번 읽고서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에 커다란 검은 개 한 마리가 안에서 컹컹 짖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동양인 여자애가 현관으로 나와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브리짓이 말한 웬디였다. 큰 덩치로 순진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 개도 함께 나왔다. 녀석의 이름은 인디. 여태껏 이렇게 큰 개와 가까이 마주한 적이 없어서 무척 놀랐지만 두두는 보자마자 능숙하게 인디를 다뤘다. 두두는 현관이 보이는 통유리 창문 앞의 일인용 소파에 앉아 이미 발랑 뒤집어진 인디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나는 웬디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중앙의 벽난로는 흐린 날씨에 온기를 더하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거대한 6인용 다용도 테이블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원체 공간이 넓어서 답답한 기분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테이블 옆은 온통 유리창이어서 브리짓의 정원과 건너편 구릉 지대, 그리고 하늘이 화폭처럼 걸려 있었다.
왼편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TV와 DVD 플레이어가 갖춰진 또 다른 거실이 나왔다. ‘거실이 두 개’라는 관념이 잘 잡혀 있지 않아서 바깥 거실과 안쪽 거실을 번갈아 쳐다보고 나서야 머릿속에 이미지가 잡혔다. 안쪽 거실에는 뉴질랜드 브랜드인 Chas Begg 피아노가 오른쪽 벽에 바짝 붙여져 있고, 그 뒤에 반원 모양으로 네 개의 크고 작은 소파들이 늘어서 있었다. 소파 너머에 있는 커다란 창문 네 개 중 왼쪽 두 번째 창문에는 밖으로 나가는 문이 교묘히 숨어 있었지만 더 이상 현관으로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두 거실 곳곳에는 농장 가족의 수많은 사진들이 잔뜩 있었다. 벽에 걸린 전원 그림과 아프리카 여인의 얼굴이 새겨진 손바닥만 한 나무조각상들, 그리고 소파 뒤 작은 테이블에 놓인 고풍스러운 시샤 기구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이 집에 대한 첫인상이 더욱 다채로워졌다.
우리가 머무는 방은 부엌을 나와서 복도에 있는 샤워실과 화장실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전날까지 농장으로 실습을 왔던 프랑스 유학생이 지냈다고 했다. 거실에서부터 부엌, 화장실까지 동일한 밝은 갈색의 나무 프레임과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채도가 낮은 하늘색 페인트와 나무톤이 어울리니 차분하고 밝은 분위기가 방 안에 가득했다. 2층 침대 하나와 퀸 사이즈 침대 하나가 더 있고도 공간이 넉넉할 만큼 큰 방이었다. 벽면 두 곳은 큰 창문이 나 있어서 역시나 전원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하얀 침대를 보니 얼른 뛰어들어 단잠을 자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짐을 옮겨 놓기로 했다.
웬디는 대만에서 과학 공학자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왔다. 휴식이 절실해서였다. 웬디의 부모님은 본인들이 뉴질랜드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 말고는 그녀가 워킹홀리데이로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며 보내는 1년을 '시간 낭비'라고 여겼단다. 시간 낭비,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언어만 다를 뿐 똑같이 말씀하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웬디는 워킹홀리데이 서류가 통과된 뒤 비행기 표를 샀고 부모님께는 1년 뒤에 돌아온다는 통보만 내린 채 홀로 이곳으로 훌쩍 떠나왔다. 그 모든 과정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 같았다. 검은색 뿔테 안경과 하나로 단단히 묶은 머리에서 그녀의 결단력과 용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제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워킹홀리데이예요. 1년이면 저한테는 충분하답니다. 돌아가서는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그전까지 이곳을 최대한 여행할 생각이에요.
이십 대 중반의 웬디는 워킹홀리데이라는 기회를 그녀의 필요에 맞게 잘 쓰고 있었다. 그녀에게 대만 이름을 물어보았다. 청샤웬. 한자음을 풀어보니 한국식 이름으로는 '정가문'이었다. 집 가(家), 구름무늬 문(雯). 생경하고 예쁜 이름이었다. 퐁실퐁실한 웬디의 체구가 구름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웬디는 자신감 넘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가족들이 왜 그녀를 ‘lovely’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인디가 갑작스럽게 짖어서 하마터면 마시고 있던 커피를 테이블에 쏟을 뻔했다. 차 하나가 마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메일과 문자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브리짓이 차 문을 열고 나왔다.
두, 제인! 만나서 반가워요!
아가씨라고 하기에는 충분히 성숙하고, 노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소녀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인디의 둔탁한 검은 꼬리가 요란스럽게 허공을 휘저었다. 눈가의 주름과 희끗한 머리색이 아니었더라면 그녀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한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한국에서의 생활,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 뉴질랜드에 도착해 5개월은 오클랜드에, 한 달은 웰링턴에 머물렀고, 2주 동안 캠핑을 하며 북섬의 동쪽 해안과 남섬의 서쪽 해안을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찬찬히 이어나갔다. 브리짓은 영국 잉글랜드 출신으로, 처음에 백팩킹으로 뉴질랜드에 왔다가 고어에서 남편인 하위를 만났다고 한다. 브리짓이 고국으로 돌아간 뒤, 하위가 직접 그녀를 만나러 영국으로 가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사랑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단다. 브리짓은 이곳의 농장 이야기가 실린 매거진을 꺼내 보여주기도 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뉴질랜드 영화 DVD를 여러 편 추천해주기도 했다. 집 안에는 가족의 역사가 곳곳에 가득했고 이야기가 풍부하게 흘러나왔다. 이야기가 저물어 갈 때쯤 브리짓은 우리를 창고로 안내해 작업복과 검부츠를 골라주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하위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마른 체형에 키도 아주 컸지만, 대단한 활기와 친화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브리짓이 만든 버터 치킨 카레와 샐러드가 테이블의 한가운데에 놓이고 향긋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맥주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제공되었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무엇이든 넉넉하게 준비해두는 모양이었다. 저녁 식사 때는 TV를 음소거로 바꾸어 놓고 대화가 오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말수가 적은 편인 나는 이 시간이 약간은 두렵기도 했다. 지금은 초면이니 궁금한 것들이 많겠지만 함께 저녁을 먹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어떤 대화를 해야 하는지 늘 신경 써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브리짓과 하위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활달히 사회적인 사람이었다. 일시적인 사회성이야 마음먹고 폭발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 부부는 사업을 이만큼 키워오고 한 집에서 낯선 여행자들과 함께 하는 삶을 1989년부터 계속 해왔으니 사회성 하나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우리를 소개하는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한국에 대한 질문도 이어져서 우리나라의 인구 수와 남북한의 관계 변화 등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식사가 끝나자 브리짓이 직접 구운 빵과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가족들의 풍부한 환대에 집이 아닌 고급 레스토랑에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후 아홉 시가 되자 가장 먼저 웬디가 모두에게 굿나잇 인사를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집 뒷마당의 별채에 머무르고 있어서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씻고 잘 준비를 하는 편이 나았다. 두두와 나도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은 미리 켜 놓은 난로 덕분에 온기가 돌고 있었다. 농장 생활의 시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함께 생활하는 데 어긋나지 않는 사회성을 갖춰야 하고, 무슨 일이든 충만한 의지로 뛰어들어야 한다. 더 이상의 늦잠과 게으름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손톱 밑이 검게 변하는 것도, 선뜻 손대기 힘든 무언가에 대해서도 망설임 없이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 완전한 자급자족까지는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연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성실함’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이불속에서 나름의 결의를 다지고 나니 딱 그만큼의 우려도 따라왔다. 나의 느린 속도와 이곳에 알맞지 않은 도시적 습관들이 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것들. 그렇지만 1700여 km 여행길의 피로가 매트리스로 스며들면서 걱정 회로도 스르르 멈추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채린제인입니다. 무려 7월의 코로만델 여행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농장에서의 새로운 경험들이 죽순처럼 솟아오르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밀린 모험기들이 많지만, 우선 가장 생생한 농장의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다음 주부터 다시 바쁜 시즌이 찾아오지만 틈틈히 기록해나가고 있을게요! :-)
(╹◡╹)채린님 스팀잇에서 보니 정말 반갑네요~ 농장생활까지 정말 대단하세요~ 🐑 🐮 🐕 😊
아론님-!!!! ㅎㅎㅎㅎ 또 오랜만이에요 ㅎㅎㅎㅎ 스팀잇에 글을 편하게 쓰고 싶다가도, '밀린 글 써야지' 하고서는 계속 업로드가 늦어졌어요 ㅠ ㅎㅎㅎㅎ 아직도 올릴 글이 산더미지만, 틈날 때 계속 써보려구요 ㅎㅎㅎㅎㅎ
내심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몽상가 p님...! ㅠ 으아 너무나 오랜만이여요. ㅠㅠㅠㅠㅠ 자주 들어오지 못해 속이 상하지만, 생각날 때마다 부지런히 걸음을 남길게요ㅎㅎㅎㅎㅎ 몽상가님 글 읽고 생각에 잠기러 가야겠어요-! ㅎㅎㅎ
두리의 모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헤헿 :D 러블리한 캐릭터인 웬디도 현재 모험중인 거로군요ㅎㅎㅎ 모험가들이 모인 농장이라... 다음 이야기도 매우매우 기대가 됩니다^^
'모험가들이 모인 농장'이라고 하니 만화 속에 있는 것 같아요ㅋㅋㅋㅋㅋ 적어도 적어도 끝이 없습니다 정말 ㅎㅎㅎ 부지런히 적어나가는 수밖에 없네요...!!!! _ 늘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토랙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