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Shallow Hal, 2001), 블라인드 (Blind, 2007) -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

in #kr7 years ago

  • 눈을 뜨다

선한 사람만 아름답게 보이는 최면에 걸린 남자 할과 눈이 먼 청년 루벤이 각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할과 루벤이 사랑에 빠지는 두 명의 여자는 다들 외모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고요. 여기까지만 알아도 영화의 진행을 대충 맞출 수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죠.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건 간단한 일입니다. 정말로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사는 게 어려울 뿐이죠. 사람들이 뛰어난 외모의 장점을 무시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날 때부터 부자였던 이들이 멸시받는 이유와 같습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누군가는 무언가를 타고난다는 걸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무엇을 사랑할까

로즈마리는 머리가 좋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여자입니다.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녀가 지닌 모든 장점은 지독하게 뚱뚱한 몸 속에 갇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최면에 걸린 할만이 로즈마리라는 사람의 전체를 보고 있지요.

나이 많고 상처투성이 얼굴을 가진 마리를 사랑하게 된 루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루벤은 멋대로 마리의 외모를 상상하며 절세 미녀를 꿈꿉니다. 마리는 굳이 루벤의 환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지만, 마리는 루벤이 사랑하는 대상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 진정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에 대한 호의는 보편적인 감성이지만 주어지는 건 공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외모를 갖고 태어납니다. 아름답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살아가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지지만, 미추를 가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모지상주의를 우리가 보는 것들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아름답게 보이는 걸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식의 질문은 공허합니다. 그런 건 외면에도 있고 내면에도 있고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고, 우리가 보고 판단하는 어디에나 있겠죠.

  • 보다, 보지 않다

할과 루벤의 마음 깊이 파고든 사랑은 두 남자가 최면에 걸리고 눈이 멀어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로즈마리와 마리는 처음부터 두 남자의 이상형이었습니다. 다만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보이는 것과 신경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의 병폐는 우리가 보고 있을 때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 눈을 감다

어둠이 떨어지면 눈은 더 많은 빛을 담기 위해 동공을 확장합니다. 장막 뒤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시야의 확장이 필요하겠죠. 언제나 같은 골자를 담고 있는 이런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또 소비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요.

누군가와 공평해지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1.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 심리 상담가로 등장하는 토니 로빈스는 실제로 유명한 심리 상담가입니다. 본인의 이름으로 카메오 출연했습니다.
  2. 팟캐스트 방송 밥상 엎고 영화에게 이단옆차기 13회에서 다루었습니다.

4.5/5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3.0/5 블라인드

2017 02 15.
2018 01 06.
"가장 아름다운 건 손끝으로 본 세상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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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집착하는 사회를 비평하는 블랙 코미디였죠 ㅎㅎㅎ
저는 개인적으로 잭블랙 나오는 영화는 다 좋아해서 ㅋㅋㅋㅋㅋ
재밌지만 씁쓸하게 봣던 영화중 하나예요~

리뷰를 쓰기 전에 다시 한 번 봤는데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영화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