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우트 (Doubt, 2008) -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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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하나가 죽었습니다.

연루된 사람은 희생자를 포함해 넷. 사무라이를 습격한 도적은 사무라이의 아내를 걸고 명예로운 격투 끝에 그를 죽였다고 진술합니다. 사무라이의 아내는 겁탈 당한 아내의 치욕을 견디지 못한 사무라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이야기하고, 무당의 몸을 빌어 직접 나선 사무라이의 혼은 아내가 도적에게 붙어 자신을 배신해 절망 속에 자결했다고 증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무라이가 죽을 당시의 상황을 목격한 나무꾼은 도적과의 졸전 끝에 패한 사무라이가 목숨을 구걸하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우주 바깥을 유영하는 SF든 가상의 대륙 너머를 활보하는 판타지든 상관없이 영화는 어쨌거나 실제로 거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의 기록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다분히 실험적이었던 영화 라쇼몽에서 항상 하나로 일치되던 스크린 속의 사실을 해체시킵니다. 관객들은 결국 영화 안에서 정말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죠.

다우트는 폐쇄적인 가톨릭 학교 내에서 학생을 성추행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는 신부와 그런 신부로부터 학생을 보호하려는 수녀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영화의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장치는 다음과 같은 의문입니다.

정말로 신부가 성추행을 했는가? 아니면 단순히 수녀의 오해인가?

영화의 보편적인 세계관 - 고정된 사실 기록에 익숙한 관객들은 이야기 진행 내내 어디선가 진실이 불쑥 튀어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다우트의 초점은 진실의 고발에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4년은 가톨릭 교구 안에서 전통 유지의 입장과 변화 수용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입니다. 전통 유지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알로이시스 수녀는 변화 수용에 앞장 서는 플린 신부가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지요. 신부가 학생 중 하나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낸다는 제보는 그렇지 않아도 품고 있던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꿉니다.

그러나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한 교구 사회 속에서, 신부가 감춘(혹은 감추었다고 여기는) 진실을 밝히고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수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듭되는 알로이시스 수녀의 조사와 추궁에도 플린 신부는 끝내 그녀의 의심을 부정합니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행동을 멈추면 핍박 받던 플린 신부는 비로소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파렴치한 성추행범을 방관하고 도움이 필요한 어린 학생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플린 신부를 압박해야 할까요? 학교 뒤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범죄 행각을 막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단지 진보적 사상을 지닌 무고한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과거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아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불확실한 기억과 빈약한 추론에 의지하여 각자의 진실을 내놓는 것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는 태도로 플린 신부를 비난해 학교 밖으로 쫓아낸 알로이시스 수녀는, 마침내 자신이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 수 없음을, 끝없이 의심하고 의심할 뿐이었음을 고백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온통 어두운 바다 위를 건너는 뱃사공이라면 언제든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참을 저어서 왔다 해도, 그래서 눈감고 싶은 아주 작은 단서가 나타나도 외면하지 않고 이곳이 아니면 방향을 틀어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태도로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막막한 바다를 건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영화의 결말이 알로이시스 수녀의 마침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수녀는 보다 능숙한 뱃사공이 될 테죠.

의심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에.

  1. 동명의 연극이 원작입니다. 원작자가 영화의 감독이기도 합니다.
  2. 팟캐스트 방송 밥상 엎고 영화에게 이단옆차기 15회에서 다루었습니다.

5/5 다우트

2017 01 25.
2018 01 11.
"의심은 확신만큼 강력하고 지속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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