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 이야기 둘] 고슴도치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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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그는 고슴도치다.

훈훈한 외모와 똑똑한 머리 그리고 좋은 집안
그는 항상 남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주변의 시선에 점점 지쳐만 갔다. 참고 참던 그에게 겨울 폭설보다 더 매서운 가시가 돋아났고, 그에게 접근하던 사람들은 모두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었다.
그는 이제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게 너무 편했다.

그러던 어느 따뜻한 봄날, 벚꽃이 역란하게 피어있던 바로 그 날
가볍게 스치는 바람에 벚꽃은 마에스트로의 손짓처럼 너울거리며 떨어졌고, 그는 그 화려한 묵음의 연주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 낙화의 협주곡을 헤치며 하얀 피부에 복사빛 홍조를 가진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 때 그에게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를 만날 때면 그의 사나운 가시는 함박눈처럼 푹신하게 내려앉았고, 그럴 때 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운명이라 믿게 되었다. 그는 이제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아프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시에 찔렸다. 난생 처음 느끼는 고통에 그는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그저 멍하게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그녀가 마모된 공간을 바라보던 그는 미어지는 격통을 참지 못하고 애통하게 울부짖었다.
상처를 줄 수밖에 없던 그녀의 가시가 더욱 슬펐기 때문에..





이야기 둘
그녀도 고슴도치다.

처음부터 그녀가 고슴도치였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의 그녀는 분명 행복했다.
희미하지만 그녀의 기억 한 편에는 자신의 어깨에 그녀를 태운 다정한 아빠와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활짝 미소 짓던 엄마의 모습이 선명히 남아있다.

‘쾅’

부서진 텔레비전과 바닥에 쏟아진 화분들. 화가 잔뜩 난 부모님, 떠나가는 아빠의 뒷모습, 그걸 마냥 지켜보며 흐느끼던 엄마의 가녀린 어깨
그녀가 12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그 해, 그녀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자신을 꼬옥 안아주던 엄마의 온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반찬 투정을 하면 자신을 혼내던 엄마와 그리고 그것을 막아주던 아빠가 함께하는 따뜻한 저녁 밥상도 사라졌다.
식탁에 앉아있는 그녀의 앞에는 식어버린 찌개와 마른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녀는 그럴 때 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떨어트리며 슬프게 울었다. 그러나 그녀를 달래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3살 생일이 되자 그녀는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녀는 작년 겨울 엄마와 함께 찾았던 아빠의 집을 기억해냈다. 집 건너에서 960번 버스를 타고 예쁜 노을이 물든 한강을 지나면 그곳에 아빠의 집이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아빠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찾아갔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막만한 발을 동동거리며 아빠가 올 때까지 앉아 있었다. 어느덧 해가지고 날씨는 추워졌지만, 아빠를 만날 생각에 심장이 콩콩거리는 그녀에게 추위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오늘 그 집 맛있었지?”

아빠의 목소리다. 그녀는 오랜만에 듣는 아빠의 목소리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아빠의 옆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고, 그녀의 품에는 아주 작고 귀여운 아기가 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본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였다.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데려가게 했고, 그러던 중 그녀는 자신이 아빠의 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데리고 온 엄마는 다시는 찾아가지 말라며 심하게 화를 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날 밤 두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 일 이후로도 세상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웠다.

그러한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그 남자는 어릴 적 그녀의 아빠를 무척이나 닮았다. 그를 만나고 있을 때면 그녀의 가시는 부드러운 강아지 털처럼 풀썩 가라앉았다. 그녀는 그에게서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언젠가는 아빠처럼 자신을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를 일찌감치 포기하였다.

그가 사랑한다고 말하며 뒤에서 살포시 안았을 때, 그녀는 세상을 원망하며 소리 없는 오열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잔인할 정도로 날카로운 가시를 세웠고, 가시에 찔린 그 남자는 매우 놀란 듯 보였다.
그녀는 놀란 그를 두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녀의 걸음이 늘어날수록 셔츠의 깃은 더욱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그녀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격한 울음을 토해내었다. 가시가 안으로 자라나 그녀의 심장을 뚫고 나왔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픈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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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쿡 찌르는 상처가 고슴도치의 가시가 낸 아픔이었군요.. 누구를 탓하기도 힘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고슴도치의 가시는 마음에도 상처를 입히네요
언젠가 가시가 빠지면 아픔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

외톨이가 되어 편안함을 느끼는 고슴도치를 보며 공감하다가, 이야기 둘에서 멈칫... 떠나버릴 것 같았다니! 그래서 포기했다니. 그리고 도망쳤다니요. 남자 고슴도치, 얼른 돌아와줘요. 그녀가 겁이 나서 그랬대요 ;ㅁ;

남자 고슴도치는 처음 느끼는 감정에 당황했지만,
똑똑한 고슴도치인 만큼 현명한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요 : )
돌아와요 고슴도치!!

종소리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에 보는 그림이라 더욱 좋네요 ㅎㅎㅎ

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 )
이제 자주자주 들어올게요 제가 너무 게으름 피웠나봐요

아파요.
찔리면
더 아파요.
가시를 품고 사는 일

맞아요 가시에 찔린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지만
가시를 품은 사람은 영원히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죠

고슴도치와 너무 잘 어울리는 글이네요.^^

고마워요 : )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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