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이 힘들어지면 먹는 양이 늘어난다. 기회가 될 때마다 뭐라도 주워 먹으려 하는 것인데, 그래서 바쁠 땐 외려 살이 찐다. 지금은 얼굴에 살이 오를 대로 올라서 공연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2 요즘은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잔다. 일정을 조정해 낮잠 시간을 따로 빼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단한 노력 끝에, 혹은 이제 정말 끝난다는 안도감 덕분에 몸이 다시 좋아지고 있다.
3 공연을 앞두고도 몸과 정신이 맑아진 것은 연습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연습을 위해 빼뒀던 시간을 모두 자는데 보냈다. 아직 근육통이 남아있지만, 몸이 회복되면서 생각이 많이 또렷해졌다.
4 가능하면 백 살도 넘겨 오래오래 살고 싶은데, 요즘의 몸으로는 마흔까지도 살고 싶지 않았다. 11월이 오면 정말로 열심히 운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몇십 년간 튼튼하게, 그래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5 불쑥 어제 '그분' 없는 '그분' 모임에서 연락이 왔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 일정이다. 공연을 앞두고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무리하면 못 갈 일정은 아니라 고민 중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선뜻 결정하기가 힘들다. 한 주만 늦어도 좋았을 텐데...
6 다음 주엔 제주도에 간다. 간단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최근 들어 늘어난 몸무게와 딱지 앉은 입술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장을 도와줄 친구도 일정이 안 돼 더욱 큰일이 되었다.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 속눈썹 연장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다.
7 이런 때에 속눈썹 연장을 잊고 있었다니... 텅 빈 얼굴로 보내버린 공연이 아쉬울 정도다. 어제 속눈썹 연장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여유가 생겼다는 마음이 들었다. 큰 리허설을 마친 후였다.
8 그저께, 신사에서 마지막 연습이 있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저녁이 되니 몸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심지어 연습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거리를 배회해야 했다. 결국 연습을 10분 앞두고는 연습실 건물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기대고 있어야 했다.
9 당장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아픔이 사라졌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절박한 몸 상태였는데, 그래서 피아노에 의지하게 되었다. 건반을 누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10 시간이 있었다면, 몸이 더 좋았다면 치밀하게 연주를 짜갔을 것이다. 그럼 틀리지 않으려 몸을 잔뜩 움츠렸을 것이다. 연습을 포기한 대신 아주 간단한 모티브만 정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때그때 움직임에 맞게 연주를 맞춰갔다.
11 모두 바쁜 시기,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동료에게 "불안하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말뿐인 위로였는데, 그저께 연습에서 나는 내가 했던 말대로 그들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위안을 삼자면 그렇다.
12 그래도 공연을 앞두고 있으니, 오늘은 연습실에 간다. 긴 시간을 예약해두었다. 천천히, 느리게, 오래 손을 풀고,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나름의 마지막 런을 돈다.
13 이것은 작업일지도 아니고, 일기도 아니고, 푸념도 아니면서 그것들이기도 하다. 그토록 간절히 끝을 바랐는데, 끝자락에 와서 또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왜일까...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올해가 지나면, 몸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는 일은 이제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몸이 좋아지고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
저도 다음 주에 제주도에 갑니다.
동선은 전혀 다르겠지만요. :)
나루님,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랄게요.
살은 나중에 빼면됩니다~~ 건강이 우선이지요~
40 이라니요...
일이 있으면 절대로 안 늙고 안 아파요.
일이 없으면 아프기 시작 합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오랜만에 마루님의 길고 재미있는 글 읽었어요 ㅎㅎ 그분이 누구신지도 궁금하고, 혹시 예전 그분이신강 ㅋ 속눈썹 연장을 꾸준히 하시는 분이시군요. 제 지인도 꾸준히 하는거 보고 안 불편하냐고 몇번이나 물어봤는데 눈썹 연장 안하고 있는게 더 불편하다고ㅋ 공연준비 잘하시고 여행도 잘 다녀오시길요. 아프셨던 모양입니다. 저도 요새 바빠 죽겠는데 입맛이 돌아서 배가 나오고 있는데 아픈거 보다는 살찌는게 나은거같아요. 단 건강하게 살찌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