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미니즘 내에서도 그 갈래와 집단이 나뉘는 만큼, 내가 이 의견을 피력했을 때 나를 동지라고 생각했던 많은 학우들, 지인들은 나를 떠나갈 것이다. 당신이 나를 떠나든, 흉자라고 욕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더 이상 소수자가 혐오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2.
언제까지였나, 교차성의 개념을 모르고 오직 여성이라는 테두리에만 신경을 곤두세워 다른 약자 집단을 혐오한 나날이 분명 있다. 내 블로그를 내려 보면 분명 그 흔적들은 자명할 것이다. 특히 과거에 동물권에 무지했던 때의 글들에 연신 한숨이 나온다. 잘 모르면 가만히 있었으면 됐던 것을, 나보다 더 무지했던 사람에게 무지했던 내가 뭐라뭐라 말을 길게 이어 갔던 것 같다.
3.
교차성을 지향하면서부터 나는 여성인권 뿐만이 아니라 다른 소수자 인권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혐오의 역사가 아무리 유구하다고 한들, 가장 거대한 소수자 집단이 다른 소수자 집단을 배제한다면 혐오의 굴레는 끊임 없이 지속될 것이다.
여기서의 배제란 개인의 의도나 의지와는 별개로 작동한다. 배제의 의도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즉 당신이 "여성인권운동이랑 다른 인권운동은 각각 따로 진행되는게 맞지 않냐"고 말하는 순간 타자화는 시작되고 이로 인해 혐오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혐오는 늘 그렇듯 약자와 소수자를 낳는다.
그래, 나와 노선이 다른 페미니스트들도 이 말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4.
소수자는 뭐가 됐건 간에 어떻게든 뭉치게 되어 있다. 그게 필연이다. 혐오는 각각 따로 작동하는게 아닌, 촘촘하게 맞물려 있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최근 페미니즘 내에서 진영 싸움이 지속되면서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상호교차 페미니스트들에게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던 것이 있는데, 바로 "왜 쓰까먹냐" 이다.
여성인권에 왜 다른 소수자 인권을 섞어 먹냐는 말이지.
5.
분리주의 측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다. 오히려 같은 여성으로서 무슨 말을 하고싶어 하는지 말 한마디만 들어도 단박에 알아차린다.
"왜 유독 여성들에게만, 페미니스트들에게만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나."
"왜 여성인권 운동에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인권을 끼얹나."
분명하게 하고 싶은 점은, '여성과 소수자의 연대'와 '도덕적 잣대'는 다른 층위의 문제라는 것이다.
6.
유독 사회적 권력자와 기득권층이 여성 집단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사실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여성에게만 "그럼 이 상황은?"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자신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순결함을 찾는다. 그러나 5 에서 언급했듯, 소수자끼리의 연대와 도덕적 잣대(일명 고나리)는 다른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
7.
나는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묻고 싶다.
분리주의 페미니즘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정말 모르는건가?
여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좁은 길목으로 내몰렸으며 소수자가 되었는지 당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갈라치기와 순결주의는 포용의 힘을 잃는다. 내가 그 배제에서 살아남았을 때엔 안도감 내지 우월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내가 내몰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국XX, 최XX를 봐라. 한때 완장을 차고 머모님이라고 TERF 사이에서 칭송받던 자들이 기혼여성이라고, 생물학적 남성이라고 배제되었던 모습을.
당신들의 운동에서 오로지 생물학적 여성만이 자격을 갖는 것이라면, 당신들의 엔딩이 어떻게 될 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채워졌던 '여성'의 자리에 또다른 약자들의 이름이 올라가게 될 뿐이지.
여성이 아닌 다른 자라면 고통받고 혐오 당해도 되는게 정말 당신들이 원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오면서 받아 온 서러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겠지. 또 그 서러움은 억울하게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귀결되기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겠지.
나는 다만, 그 분노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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