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을 며칠전 수리된 믹서기를 포장한 구겨진 신문지 조각에서 보게 되었다.
그가 제일제당의 대표로 발령됐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졸업 후 첫 직장인 대한통운을 1년째 다니던 날,
입사 1년 축하자리에서 당시 대한통운 공동대표이던 그의 연설이 있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답답한 업무처리 속도를 밤샘근무로 독촉하며 바꾸어 낸 성과를 자랑했다.
그는 물류 업종이 맞지 않는 것 같으면, 빨리 다른 업종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질문을 받는 그에게 난 2교대 업장이 언제쯤 3교대로 바뀔수 있을까 물었다.
그는 당시 주 5일제를 채택한 우체국을 비웃으며, 택배의 경우, 원하는 사업자에 한해 주말 배송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뒤 회식자리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 사업의 본질을 꿰뚫는 이재현 회장이라고 말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언급하기도 했다.
난 그 다음날 출근을 했고, 센터장에게 사직을 통보했다.
그땐 많이 화가 났었는데, 지금은 무덤덤하다.
그가 위선자가 아니라서, 난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그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후, 일 년 뒤, 우체국은 토요일 배송을 재개했다.
택배 사업자 한 분이 과로로 사망했다.
대한통운은 흑자로 돌아서 주가가 두배로 올랐다.
이재현 회장은 감옥에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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