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고 있는 @kiwifi 키위파위님이 만들어 주신 대문.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다
참 다양하고도 여러 질문들을 받는다. DM으로도, 메세지로도, 오프라인 에서도, 친한 남성들로부터, 모르는 이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대부분은 열린 마음으로 논의를 구하고자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그런 나라고 해서 모든 억측, 우월주의, 권력적 즉 상호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종류의 질문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에 SNS에서 돌아다니는 한 짤이 떠올랐다- 한 미국 기자가 오스카 시상식에 참여한 봉준호 감독에게 왜 영어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냐? (왜 한국어로 만들었냐는 뜻) 의 질문을 던지고, 백인 우월주의, 일방적인 질문에 분노한 사람들의 분노가 댓글창에 넘쳤다. 이 질문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정치적, 또는 사회적으로 ‘백인 우월주의’ 는 미국의 오랜 딜레마로 치부되어 왔지만, 그보다 더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학문적 한계는 어디이고 또 정녕 묻고자 하는 의도와 대답은 무엇인가를 성찰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즉 일방적으로 뱉어내는 자기중심적 질문을 받고 싶은 이가 과연 존재할까. 물론 이러한 종류의 질문을 내가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아직도 교류하는 지인들에게로부터 받을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어려운 문제이다.
이민경 저자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에서 일부 설명하는 ‘일일히 설명해주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는 그들을 교육할 의무가 없다’를 따를지,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남성’ 작가들이 강조하는 ‘어르고 달래고 가르쳐주다 보면 조금씩 개선될 것’을 실천하는 자세를 취할지, 선택은 오롯한 내 몫이다. 후회 또한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어렵다.
좋은 스승이란
좋은 배움을 줄 수 있는 인생의 스승을 늘 모색해왔다. 전에 썼던 글에서 처럼, 스승'이라는 이데에 대해선 깊은 고찰을 나눠왔고, 늘 'missing' 즉 갖고싶어 해왔고 늘 갈망해 왔다. 나와는 같기도 또한 다르기도 한 스승의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생각들을 닮아간다는 것 그리고 '반'스승의 뜻 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내가 항상 원해왔던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벅차고 부담스럽다. 나이가 많고 적고 남자고 여자고 직업과 전문성을 떠나 한 사람에게 깊은 영감과 깨우침을 전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상적이기만 하다. 그래서 난 늘 내 '스승'이 되어줄 존재를 찾아 모색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라는 변명을 안고 있다. 특정한 한 사람을 무비판적으로 이상화하는 일을 그토록 경계해 왔건만, 또다시 그 구렁텅이에 단단히 빠졌던 나를 반성한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전극에 달했던 나머지 내 앞에 나타난 새로운 세계에 깊이 빠졌었다. 물론 세상 사람 모두 각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식세계는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 그릇 크기만큼 듣고 보는 법이다. 나는 너무나도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푹 빠지고 싶었던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은 내면의 다른 목소리와 늘 싸워야 했다.
스쳐간 인연을 특정한 무엇으로 정의를 내리는 과정은 함께 나눈 시간과 대화를 내 마음과 몸 속에 녹여내고 앞으로 성장하는데 거름으로 쓰는 중요한 일이다. 스승이라고 지칭하기 전에 온갖 ‘스승’이라는 말의 어원, 그렇게 부를 수 있는 데에 어떠한 요소가 필요한지를 찾아보고,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를 성찰하는 등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납득하고 반박하는 품을 들였다. 오랜 시간동안 나 자신과의 싸움을 거쳐 온 지금은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차례다.
피드에 나타나는 우리의 삶
살다보면 자연스레 멀어지는 사람도 있고, 찾아왔다가 금새 사라지거나 우연한 기회에 만나 친해져 오랫동안 이어오는 교류 또한 존재한다. 아쉬움 가득한 그러나 후회는 없는 20대에 스쳐지나간 인연들. 한때는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진정으로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몰라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했었다.
며칠 전, 우연히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친구계정의 포스팅에 댓글을 단 것을 보고 클릭해 그의 피드를 보게 되었다. 한때는 꽤나 왕래했고 친했지만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여러 이유로 교류가 끊긴 사이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지난 날에 나를 스쳐지나간 인연을 다시 보게 되니 잘 살고 있나, 불쑥 궁금증이 올라와 몇분간 그의 피드를 정독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SNS Feed 피드로 나의 관심사, 가치관, 일상 등을 표현한다.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매개체 SNS 는 ‘Social Networking Service’ 의 줄임말이다. 나를 어떤 사람으로 내 보일지 ‘선택적’으로 설정하는 Facebook, Instagram, Twitter 등 다양한 플랫폼들을 지칭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네트워킹 망 안에 존재하는 셀 수 없는 사람들, 그 속에 과연 내가 남긴 향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의 삶은-나도 그렇듯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였다. 사실 정독할만한 흥미로운 점도 찾지 못한데다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또는 그렇게 보이는 모습을) 봤으니 됐다, 싶어 내리던 피드를 멈추고 핸드폰 화면을 껐다.
돌이켜보면 20대에 휘둘리고 또 불안했던 나와 타자와의 관계 사이엔 무수한 상처가 존재했다. 제대로 곁을 내어 주고 보듬어줄 방법을 알지 못했던 서로는 말 한마디에 쉽게 떨어져 나갔고 돌이킬 수 없는 회복불가능의 사이가 되는가 하면, 오히려 엉뚱하게 마음을 열고 지금까지 사유를 함께 나누고 응원하는 돈독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좁고도 넓은 내 지인 울타리망 안에 있던 몇십명의 사람들을 얘기하자면 말이다.
나는 스물다섯에 프랑스로 유학을 오면서 사실 왠만한 얕은 관계들은 알아서 정리가 된 운좋은(?) 케이스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과 카톡 하나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난 몇년간의 세월동안 바다를 넘어 진실한 정을 나눴다. 겉치례로 연락하던 사이나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사이, 일하며 오다가다 만난 동료들 등은 대부분 내가 소심이 뜸하자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고, 일명 ‘Toxic relationship’이라 불리우는 ‘중독적 관계’ 였던 사람들과도 미련없이 단절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운 좋을 만 했다. 넘쳤던 관계의 홍수 속에서 진정으로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결국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던 지난 날들을 반성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덕분에 담백하고 가벼워진 관계의 지갑은 현재 더욱 사랑과 의리로 살이 찌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 속 존재했던 나와 타자간의 간극은 사실 그리 깊지 않았지만, 스무살의 나는 몰랐다. 나와 어떠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모든 사람에게는 내 곁을 아낌없이 내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또 실제로 상처받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시간과 마음을 다해 애썼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좀 더 자란 당신이 해결해 주는 것 이였을수도, 아니면 그대와는 인연이 아니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실패하잖아. 누구나 돌아설 때가 있어. 우리는 각자를 견디며 사는 거야. 괜찮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의 무게를 억지로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어. 구질구질해지기 전에 떠나는 것도 괜찮은 거야.” 어디선가 읽고 기억하는 문구. 특정한 사람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추억함으로서 미련을 살짝 내려놓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2월말에 댓글 답니다 ~ 사유가 많은 사유로 가득찬 사유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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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도 찾아와 주셨군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