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없이 외국어를 배울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다른 나라 말을 사람을 통하지 않고 애플리케이션만으로 배울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 한계는 어느 정도인가?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가장 직접적이고 비용과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방법은 그 언어를 쓰는 환경에 자신을 '내던지는' 방법이다. 원어민(native)에게 1 대 1 과외를 받거나 소수 혹은 다수를 상대로 하는 강의를 듣는 것이 그다음으로 효과가 좋은 방법일 것이다. 온라인 강의 시장도 상당히 발전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와 같이 수요가 많은 외국어와 더불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강의가 이미 널려 있다. 가격은 현장 강의나 개인 튜터보다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강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효과도 떨어지기 쉽다.
시간과 비용 투자 없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독학'에 솔깃한 이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투자할 돈과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때문에 적은 비용과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 배분으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은 많은 '독학자'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언어 학습 애플리케이션도 매우 다양하지만 이번 글과 이어지는 글은 필자가 많이 사용해본 듀오링고와 바벨을 비교해볼 것이다. 외국어, 특히 한국에서 배우기 쉽지 않은 비인기 외국어 학습자에게 두 앱은 이미 친숙한 이름으로 다가올 수 있다. 둘 다 어느 정도 사용해 본 경험자로서 중요 특징과 솔직한 후기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이번 글에서는 기본적인 차이점을 주로 비교하고 다음 글에서는 경험하면서 느낀 점을 주로 설명할 예정이다. 미리 밝히자면 필자는 두 애플리케이션 제작자와 어떤 관련도 없으며 필자의 의견은 지극히 개인적인 후기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의외로 둘을 꼼꼼하게 비교한 글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비교는 2018년 2월을 기준으로 했다. 부연 설명이 없는 '현재'는 2018년 2월을 의미한다.
사용 방법과 비용
한 줄 정리: 듀오링고는 애플리케이션 내 구입(in-app-purchase)에 의존하지 않고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사실상 무료에 가까운 애플리케이션이다. 바벨은 구독 기반 애플리케이션으로 3개월, 6개월 혹은 1년 구독권을 선결제한 후 해당 언어를 공부하는 방식이다.
듀오링고
2018년 2월 현재 듀오링고는 다양한 운영체제에서 사용 가능하며, 다운로드 및 실행은 무료로 할 수 있다. 다만 하나의 섹션을 마칠 때마다 광고 푸시가 뜬다. 이 푸시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는 듀오링고 플러스라는 유료 구독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데, 광고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2년 전 처음 듀오링고를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유로 전환의 충동을 느끼지 못했다. 잠깐 나오는 광고가 싫다고 YouTube 레드를 신청하지 않는 정도라고 비유하면 적당하다. 듀오링고는 하트 포인트 방식을 채택하여 연습을 할 때 틀릴 때마다 하트 포인트가 1씩 차감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포인트가 다시 채워진다. 이미 배웠던 내용을 복습할 경우 하트 포인트를 회복할 수 있고, 보석을 이용해서 하트 리필을 할 수 있는데, 이 보석은 매일매일 출석해서 1일 목표 달성을 하거나 특정 챕터를 완료하면 받을 수 있지만 구매도 가능하다.
바벨
2018년 2월 현재 바벨 역시 다양한 운영체제에서 사용 가능하지만 윈도우 기반 PC로 바벨을 사용한 적은 없다. 바벨은 각 언어별 맛보기 1강 이후 무조건 유료 구독을 해야 나머지 진도를 나갈 수 있는 구독 기반 시스템이다. 1개월, 3개월, 6개월, 12개월 구독이 가능하며 1년에 꽤 여러 번 프로모션 기간이 있는데 개월 구독 시 3개월 추가, 6개월 구독 시 6개월 추가 등 1+1 행사를 실시한다. 안타깝게도 그냥 3개월을 1.5 개월 가격에 구독하는 방식의 프로모션은 없다. 필자도 이런 프로모션 기회에 맞추어 1년 구독권을 6개월 가격으로 결제했다. 구글에 검색해보면 프로모션 코드가 공개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 무엇이 유효한지는 아마 직접 찾아봐야 할 것 같다. 2018년 2월 현재 1개월 구독 가격은 12.95 달러, 3개월은 26.85 달러, 6개월은 44.70 달러, 12개월은 83,4 달러로, 오래 구독할수록 월별 구독료는 저렴해진다. 디지털 구독 시스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종의 번들 할인 혹은 벌크 디스카운트 방식이다.
배울 수 있는 언어 종류
한 줄 정리: 배울 수 있는 언어의 종류는 언어 학습 언어(프로그램 진행 언어)를 영어로 설정하는 것을 기준으로, 듀오링고가 압도적으로 많다.
듀오링고
듀오링고는 현재 27개 언어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홈페이지에 나열된 순서대로 쓰면 다음과 같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아일랜드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발리리아 어(High Valyrian, 왕좌의 게임에도 나오는 그 언어인가봅니다), 러시아어, 스와힐리어, 폴란드어, 중국어(보통어)
루마니아어, 일본어, 그리스어, 에스페란토, 터키어, 베트남어, 히브루어, 노르웨이어, 우크라이나어, 헝가리어, 웨일스어, 체코어, 한국어
발리리아 어의 경우 필자도 처음 듣는 언어인데 <왕좌의 게임> 시리즈와 그 원작 소설에 나오는 언어인 것 같다. 포르투갈어, 스페인어의 경우 브라질과 포르투갈에서 쓰는 포르투갈어 다르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과 스페인에서 쓰는 스페인어가 다르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프로그램이 어떤 언어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영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발음은 미국식을 주로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바벨
바벨은 현재 14개 언어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홈페이지에 나열된 순서대로 쓰면 다음과 같다.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터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인도네시아어, 네덜란드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바벨 영어의 경우 영국식 영어를 표준으로 한다. 바벨이 European Regional Development Fund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음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주로 유럽어 위주인 것도 지원 주체를 고려할 때 이해가 간다.
정리하면, 듀오링고가 더 종류가 많으니 훨씬 많은 선택권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적인 장점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자세한 설명은 이후에 등장할 것이다.
배우는 방법
한 줄 정리: 듀오링고와 바벨 모두 원칙적으로는 다른 도구 없이 모바일 기기나 PC, 노트북 만으로 학습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외국어 학습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듀오링고
듀오링고에서 언어 배우기는 게임 테크트리를 타는 것처럼 일종의 사다리 타기 게임을 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전 단계를 모두 완료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며, 최종 단계까지 가면 언어의 유창함(fluent) 게이지가 100%를 가리키도록 설계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과정을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100%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가 나왔다는 경험담이 많은데 그 이유는 좀 더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기본적인 인사말과 인칭 명사 등으로 시작해서 동물, 장소, 음식, 옷, 상황, 추상명사 등으로 나아가며 철저하게 단어 위조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그림 카드 맞추기(단어와 알맞은 그림 매칭)과 같은 '말랑말랑한' 방식으로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들은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하기(하지만 문장 단위이므로 어렵지 않다), 알맞은 번역 찾기, 단어 순서 알맞게 나열하기 등 좀 더 어려운 방식이 주로 나오고 중간에 따라 읽어보기 (발음이 너무 안 좋을 경우 틀린 것으로 간주함)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 경험상 모든 언어에 대해서 따라 읽기가 지원되지 않는다. 독일어의 경우 모든 세션에 따라 읽기가 1회 이상 등장하는 반면, 스웨덴어는 초기에는 분명 따라 읽기 세션이 있었는데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따라 읽기가 사라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독일어의 경우 따라 읽기 시 발음에 매우 관대하다. 분명히 필자가 틀린 발음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맞았다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타이핑하는 연습문제의 경우 사소한 오타(typo)에는 너그럽지만 문법적으로 의미가 달라지는 오타의 경우에는 좀 더 엄격하게 프로그램 되었다. 일부 유럽어에서 보이는 움라우트 등의 악센트를 사용자의 키보드로 구현할 수 없는 경우 이는 너그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바벨
바벨은 마치 언어 교양 강의를 모바일 기기에 옮겨놓은 것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메인 코스가 4개 정도 존재하고, 메인 코스 이외에 번외 편으로 문법, 단어 집중 학습, 딕테이션, 발음 교정 등의 챕터도 따로 존재하는데, 각 챕터의 내용 중 일부 혹은 전부는 메인 코스에도 포함되어 있다. 발음의 경우 당연히(?) 메인 코스 1, 2 단계 수준에서 모두 커버된다. 바벨의 경우 특수문자 문제를 앱 내에서 해당 언어에 맞는 키보드를 직접 띄워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때문에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러시아어의 경우에도 아무 어려움 없이 바로 모든 알파벳을 화면에 구현할 수 있다. 바벨의 각 메인 코스는 따라 읽기, 영어-외국어 매칭, 철자 순서 바로 쓰기, 기본적인 문법 사항 설명과 이 모두를 갈무리하는 대화 내용 채워 넣기의 포맷으로 이루어지며, 두 개의 강의가 하나의 주제를 이루고, 두 주제가 끝난 다음에는 리뷰가 하나 따라붙는다. 때문에 사실상 한 개의 주제는 3개의 작은 강의로 이루어진다.
바벨도 강 강의가 끝나면 성취도를 수치화해서 보여주는데 자주 틀릴수록 성취도가 낮아진다. 단 따라 읽기 부분은 완벽하게 따라 읽지 못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며 이 점수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신, 따라 읽기에서 학습자의 발음을 인식하는 기준이 더 까다롭다. 외국인 학습자가 취약한 발음에 특히 더 엄격한 느낌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어나 스페인어의 떠는 r 발음이나 독일어의 움라우트 발음, 스웨덴 어의 각종 반모음 등을 최대한 똑같이 따라 하려고 애를 써야 겨우 넘어간다. 애플리케이션이 사용자와 밀당하는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복습 및 꾸준한 학습 동기 부여 방법
한 줄 정리: 듀오링고가 더 사용자를 귀찮게 한다. 그만큼 꾸준히 공부하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는 확실하다.
듀오링고
듀오링고는 원할 경우 매일 이메일 푸시를 쏴 준다. 그리고 매일 연속으로 일정 시간 이상 투자할 경우 "n 일 연속"으로 했음이 기록된다. 초반에 말했던 돈 주고 구매해야하는 보석도 이 매일매일 출석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50개 보석을 담보로 걸고, 7일 연속 참여하면 100개를 돌려주는 리워드 프로그램에 도전해서 성공할 경우 50개 보석을 덤으로 얻는다. 물론 중간에 하루라도 참여하지 못하면 다시 초기화된다. 한 번 완료한 챕터도 시간이 지나면 성취도 바가 줄어들고, 이때 복습을 한 번 하면 다시 성취도 바가 가득 차게 된다. 유창도 수치도 같이 하락한다.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을 경우 이 성취도 바가 대폭 감소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중간에 복습도 조금씩 해 주고, 매일 참여해야 '성취도 게이지 관리'가 쉽다.
바벨
바벨의 경우 복습해야 할 어휘를 앱 내에서 알려준다. 배운 지 오래된 순서대로 뜨는데, 단순히 단어 카드를 한 번 보고 넘어가는 방식과, 직접 타이핑을 해 보는 방식 두 가지로 복습이 가능하고 제대로 복습하고 싶다면 후자를 권한다.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을 경우 역시 메일로 푸시가 뜨지만 듀오링고만큼 자주 뜨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습에 대한 시각적 압박은 더 확실하다. 복습해야 할 단어의 수를 숫자로 바로바로 보여주고, 숫자가 쌓여갈수록 '내가 이래되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마련이다.
여기까지 두 애플리케이션 사용의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했다.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이 더 좋다는 것인가? 결론은 다음에 이어질 글까지 읽어보시고 내려도 늦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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