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블록체인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론 중 하나는 ‘공격자’를 가정하는 것이다. 이는 비트코인 논문에서 사토시가 시작하여 가상화폐 생태계 내에서는 매우 ‘전통적인’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토시는 이 방법론을 이중지불을 노리는 공격자에게 적용했다. 즉 ‘온체인 이벤트’에 대한 공격자를 가정하고, 그것을 ‘가상화폐의 발권’이라는 ‘온체인 프로토콜’로 방어해 낸 것이다. 그것은 매우 훌륭한 착상이었고, 그 발상이 ‘공개 블록체인’이 성립 가능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공격자’를 가정하는 사토시의 방법론은 더 확장되어 적용되어야만 한다. 가상화폐에 대한 공격은 ‘온체인 이벤트’에 대한 공격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92년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돌연 유럽통화기구의 ‘환율조절메커니즘(ERM)’에서 탈퇴했다. 그 이유는 더이상 ERM을 지키다가는 영국이 국가 파산 상태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었다. 영란은행을 그 지경에 빠뜨린 것은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였다. 퀀텀펀드를 필두로 미국의 헤지펀드들은 거대한 자금 동원력과 금융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1조 달러 수준의 파운드화 투매 공격을 통해 파운드화를 폭락시켜버렸고, 그러한 환율 폭락을 막으려는 영란은행의 시장 개입은 엄청난 비용을 퍼부어야 하는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다. 영국은 EU가 ERM을 통해 유지하려 했던 EU 국가 통화 간 준고정환율제를 방어하기 위해 쏟아부을 돈이 바닥난 것이다.
현재 토큰 이코노미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는 오프체인 포인트는 ‘거래소’다. 그런데 거래소에서 매수나 매도를 통해 시세를 조작하여 이익을 얻는 것은 매우 큰 비용이 든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온체인은 적은 비용으로도 토큰 유동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dispute나 challenge와 같은 트랜잭션에 대한 이의 제기 프로토콜을 내포한 토큰의 경우, 유동성 공격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온체인’ 상에 유동성 병목을 만듦으로써, 거래소의 가격 메카니즘에 영향을 줌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프로토콜’을 설계할 때는 ‘온체인’에서 공격자의 시도를 방어할 수 있는가를 고려함과 동시에, ‘오프 체인’ 상에서 유동성 함정을 만들려는 공격자를 가정하는 방법론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토큰 이코노미는 기술적 설계자들의 ‘진심’과는 무관하게 공격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시세 조종을 할 수 있는 좋은 사냥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토큰이 유통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떻게 할까?
좀 과격한 결론이지만...하드포크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