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같지만 벌써 1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을 남의 나라 캐나다에서 경험한 4가족. 벌써 아이들은 12살과 10살이 되었네요. 이역만리 타향에서의 임신과 출산의 히스토리. 약간의 그리움....가끔 아이들을 보면 그 때의 그 순간들이 생생한 기억으로 떠올라 작은 미소를 짓게 됩니다^^
30대 후반에 얻게 된 첫아이....간호사가 왕
결혼 자체를 30대 중반에,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시작한지라 첫 아이는 손에 안은 것은 2007년 여름. 아내역시 30대 중후반이라 특별관리를 해주더라구요. 우리나라와는 달리, 남편 손을 잡고 온 예비부부들을 병원 옆 클리닉에서 아기자기한 예비부모 교육이 수개월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교육은 인도계의 수간호사가 도맡아서 했고, 몸의 이상여부에 대한 진찰만 의사가 도맡아서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왕이었는데...캐나다에서는 간호사들이 왕이었습니다.
태아성별을 알려주지 않는 캐나다
가끔 병원에서 하는 초음파 검사 때, 한국인, 중국인, 인도 사람등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사람들은 태아의 성별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물어봅니다. 잘 가르켜주지 않습니다^^ 왜 알려고 하냐는 것이죠. 설령 알더라도 낙태는 아주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언감생심입니다. 다만 이민자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손쉽게 낙태를 할 수 있을 뿐이죠. 배가 많이 불어올 즈음, 아이의 정상여부를 감별하기 위해 양수검사를 했는데.....이 때에는 성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데이터가 나오더라구요. 양수검사 후...둘 다 사내아이라는 사실에 출산준비는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출산 직후, 샤워하고 빵먹으라고?
산고 끝에 아이를 낳자마자, 간호사가 뒷마무리하고 병원에 있는 화장실로 데려가서 샤워를 하라고 하더라구요. "안돼...하지마"...아내에게 그랬습니다~ 한국에서는 출산 후 양말신고...물에 손도 안대는데.....캐나다에서는 "샤워하세요"^^ 그리고 곧이어 나온 산모 식사......커피와 빵...샐러드.....뜨악이었습니다. 비행기타고 날라오신 제 어머니이자 아내의 시어머니가 정성껏 끓인 미역국을 집에서 공수해다가 먹였죠. 둘째 아이를 낳을 때에는 그려러니 했습니다^^
이상하게 혈액형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왜 혈액형을 궁금해 하니?.....뭐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첫째 아이의 혈액형은 B형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냈고, 둘째 아이도 최근에 혈액형이 B형임을 알았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의 혈액형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라도 혈액형을 알아야 될 상황이 발생하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고....아이의 혈액형이 궁금한 한인들의 애를 태우더군요. 유난히 혈액형에 집착하는 한국인과는 달리, 입양문화가 발달해서 우리나라 같이 순혈주의에 대한 집착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그땐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두 아이 출산비용 "0"원?
임신 전 클리닉에서 교육받고, 매달, 매주 진료받고......두 아이 출산하고 퇴원해서 집에 돌아왔지만...돈 한푼 들지 않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캐나다의 무상 의료시스템의 위력이죠. 편리한 출산을 위한 제왕절개수술은 숨이 넘어가기 전에는 해주지 않고, 신생아용 카시트를 준비하지 않으면 아이를 집에 데려올 수 없습니다. 병원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신세지고....지갑만 만지작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나오는 것이 그리 익숙하지 않았죠. 아....0원이 아니라 75불입니다. 첫 아이 출산 직전, 짜장면 먹던 아내가 쓰러져서 앰불런스에 실려간 사건이 있었죠. 앰불런스 동원 가격은 무상 의료시스템과는 별개라고..고지서가 집으로 날라왔습니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8만원을 낸 셈이죠.
한국에서 비싸다는 각종 신생아 예방접종
아이를 낳은 후에도 각종 예방접종을 위해 관련 병원으로 향했죠. 한국에서는 이것저것 쏠쏠한 지출이 있다는 신생아 예방접종. 모두 무료였지만, 병원 원무과, 간호사, 의사들 모두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로 맞아 주었습니다. 의료비 단가를 올리기 위해서 이것저것 권유하지도 않고, 무상의료라 뭐하나 허투루 진행하는 법이 없는 것에 작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공짜면 양잿물도 큰 걸로 마신다는데.....빼먹지 않고 이것저것 꼼꼼하게 주사를 맞혔습니다. 두 녀석 모두^
해외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시어머니이자, 제 어머니가 두번씩이나 한국에서 오셨습니다. 장모님은 몸도 편찮으시고, 100세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있는 바램에 그렇게 되었죠. 외국에서 아이는 낳는다는 것은 두 부부가 똘똘 뭉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무척이나 절실해지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지금도 아내는 그 때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기고, 시어머니에게 무척이나 잘합니다. 평생 갚을 수 없은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그 때 수고해주셨던 어머니의 주름은 더더욱 깊어졌습니다. 자식된 도리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는 요즘이네요ㅠ
외국에서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니...복 받으셨네요~
캐나다 의료 가격이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