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T History: 혁명? 신기루? 무허가성을 가진 화폐는 달러를 위협할 수 있을까?

in #coinkorea6 years ago (edited)

비트코인은 화폐인가

비트코인의 등장은 당연히 많은 이들에게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비트코인의 원초적인 수요는 결국 무분별한 화폐 생산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이들에게 나왔습니다. 중앙 기관이나 특정 기득권들을 위하지 않는 화폐, 꾸준히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화폐. 그리고 궁극적으론 네트워크가 넓어짐에 따라서 가치가 올라가는 디플레이션 화폐. 그런 화폐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사람들이 비트코인의 초기 수요를 만들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비트코인이 화폐냐 아니냐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화폐로 받아들이고 누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객관적으로도 비트코인이 화폐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여태까지 비트코인이 교환의 매개로써 적용된 사례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최근에도 비트코인이 교환의 매개로써 적용된 사례가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그 기준이 될 수 있죠.

내가 비트코인을 교환의 매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이 비트코인을 교환의 매개로 사용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요. 2018년도 기준 비트코인 트랙잭션 양을 달러로 환산했을 때 그 가치는 페이팔의 거래 총량을 넘었다고 하죠. 물론, 모든 트랜잭션이 재화를 교환한 교환행위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꽤 많은 양의 트랜잭션이 거래소에서 거래소로 전송되는 것일테니까요).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주장이죠. 자신의 경제학적 주장이 어떻든간에, 결국 교환의 매개로 사용하면 그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니라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무엇이 화폐가 되어야 하느냐무엇이 화폐인가는 다른 이야기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비트코인은 화폐입니다. 거래량이 어떻든 지구상에 한 명이라도 비트코인을 가지고 교환행위를 한다면 화폐가 맞습니다. 사실 올해초 광기의 투기장이 일고나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등의 토론이 있었을 때, 애초에 논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주장은 그냥 무엇이 화폐가 되어야만 하는가 에 대한 주류경제학자의 사견이었을 뿐, 무엇이 화폐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경제학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경제학 전공자와 비전공자들을 두고서 토론을 하니 당연히 유시민 작가의 말이 더 설득력있게 보였을 뿐, 결코 유시민 작가의 주장이 맞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헤게모니를 위협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저런 의미없는 주제를 가지고 밤샘토론을 할게 아니라 본질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과연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라 불리는 것들이, 과연 기존 달러 헤게모니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질 것인가 아닐 것인가. 이것의 문제입니다. 기존에 인류가 잘 쓰고있던 법정화폐를 비트코인이 대체할 수 있는가? 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기존 경제학의 논지 차이들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비트코인 자체가 가진 기술이 기존 화폐보다 부족한 것들이 있습니다. 처리속도의 문제겠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뭐 기술의 문제이니 차츰 이런 처리속도의 문제는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 비트코인 캐시(Bitcoin Cash)의 등장도 결국 한 예시가 될 수 있겠죠. 라이트닝 네트워크처럼 별도의 채널을 열어서 오프 체인으로 소액 거래들을 해결하는 방법들도 예시가 되겠고요. 세그윗처럼 서명을 따로 분리해서 기존 블록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거래량을 더 많이 늘리는 방법도 있겠죠.

이렇게 기술의 문제들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여전히 경제학적 논쟁이 남아있는데요. 결국 인플레이션 화폐냐 디플레이션 화폐냐의 차이, 그리고 디플레이션이 경제에 해롭다면 그 정도가 어느정도길래 정부에게 화폐 독점권과 기관의 불투명성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봅니다.

디플레이션 화폐에 대한 옹호와 인플레이션 화폐에 대한 옹호는 다 각자만의 의견이 있습니다. 일단 인플레이션 화폐를 지지하는 케인즈의 경우는 인플레이션 자체가 소비를 촉진시키고 저축을 지양하게 된다는 점을 주목했죠. 결국 수요 중심의 경제에서 소비라는 것이 가장 중요했을테니 말이죠.

반면에 소비보다 저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오스트리아 학파 입장에선 디플레이션 화폐를 선호했습니다. 디플레이션 화폐야말로 장기적으로 저축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고, 투자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저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결국 디플레이션 화폐가 인플레이션 화폐보다 절대적으로 열등하거나 그렇지도 않으므로, 충분히 헤게모니야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게 맞다는 생각입니다.

시뇨리지의 문제

시뇨리지의 문제도 분명히 있습니다. 만약 디플레이션 화폐가 통용이 된다면, 초기 진입자들이 얻어가는 시뇨리지 효과가 굉장합니다. 예를 들어서 비트코인이 1원이기 이전부터 구매했던 A씨는 지금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사람보다 대략 700만배의 이득을 취하는 겁니다. 만약 비트코인이 1억원이 된다면, 1억배의 이윤을 챙기게 되는 것이죠. 결국 디플레이션 화폐는 초기 진입자들이 아무런 노동도 없이 재화와 용역을 살 수 있는 이득을 얻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게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시는 너무 터무니가 없죠. 디플레이션 화폐 기반의 경제가 확대되어서 모두가 사용하려면, 많이 사용이 되어야하고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의 트랜잭션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집단은 바로 초기 진입자들이 될 겁니다. 시장에서 가능성있는 무언가를 먼저 발견하고 선점하고,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 직접 노력했기 때문에, 분명히 불로소득이라고 부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선점효과를 볼 수 없다면 아무도 자발적으로 네트워크 확장을 하려고 하지 않을겁니다. 시장에서 선점효과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겠죠.

시뇨리지 효과가 그렇다고 국가 독점 인플레이션 화폐엔 없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기존에 시장에 풀려있던 화폐의 구매력 하락을 이야기 하는데. 중앙은행에서 돈을 발행하면 시중 은행들에 빌려주게 되고, 또 은행들은 그 화폐를 비교적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 빌려줄 겁니다. 담보가 있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먼저 빌려주겠죠. 이들은 그러면 인플레이션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폐를 1차적으로 소비하게 되고요, 그 인플레이션은 새로 뽑힌 화폐에 가장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 다시 말해서 돈을 빌릴 담보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발생합니다. 즉, 인플레이션은 가난해서 담보조차 없는 사람들의 재산을 자본가에게 전달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결국 시뇨리지 효과는 어디에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비트코인과 같은 화폐에선 시뇨리지를 초기 진입자들이 보는 것이고,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에선 시뇨리지를 돈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 차이죠.

하지만 블록체인이 바꾼 결정적인 차별점은 분명히 있다.

법정화폐는 말 그대로 정부가 선포한 화폐인데요. 독점화폐이기 때문에 사실 그 외의 화폐들은 사용하면 위조지폐 취급을 받고 거래도 불가능 했습니다. 심지어 금이랑 은과 같이 오랫동안 인류에게 통용되었던 화폐들도 페깅하여 사용할 수 없었죠. 하지만 블록체인이기 때문에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들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위협적입니다. 비트코인 예수라고 불렸던 로저 버(Roger Ver)는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막으려면 전 세계의 전력을 끊어야 한다.”라고 한 바 있는데요. 결국 비트코인이 여타 다른 화폐들과 다른점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무 허가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부가 막겠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정부가 허용한다고 해서 그러한 기록들을 다 추적할 수도 없습니다(익명 코인을 썻을 때 말이죠). 결국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는 정부의 허가나, 특정 기관의 허가가 필요없는 첫 화폐가 되는 것이겠죠.

박상기 법무부장관도 P2P거래는 막을 수 없다고 이야히 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을 사용하기 위해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정부가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블록체인이 화폐에 도입이 되어서 초창기에 화폐가 가지고 있던 성질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생적인 화폐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이 화폐경제학적 측면에서 가지는 의의는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물론 화폐에 대한 생각은 각자 주관적이시니, 법정화폐를 지지하실 수도 있고, 저 같이 비트코인을 지지하실 수 있지만, 둘 다 장단이 있고, 여기서 어떤 부분에 더 중점을 두느냐가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도 즐거운 밤 되시길.

-rothbard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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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네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